이라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라는 미국의 압력으로 세계 각국이 이라크 공격에 대한 찬반 고민에 이어 '두 번째 시험'에 들었다.미국은 개전 이틀째인 20일 세계 62개국에 대해 "이라크에 새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 이라크 외교관 추방, 이라크 공관 폐쇄, 이라크 자산 동결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반전 여론에도 신속히 이라크 공격을 지지했던 일본 정부는 '미국 추종외교'라는 새로운 비난을 촉발할 것을 우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민 중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무성 장관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며 미국의 요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조차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스의 주권에 관계되는 문제로 응할 이유가 없다"고 미국의 요구를 일찌감치 일축했다. 호주는 즉시 자국 주재 이라크 외교관들에게 닷새 안에 출국할 것을 통보해 미국의 요구에 호응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부 외교관만 추방하고 단교는 하지 않는 '성의표시'로 흐르고 있다. 독일은 지난 주 외교관 4명을 첩보행위를 이유로 추방했지만 단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도 23일 대표단장을 제외한 이라크 외교관들에게 추방명령을 내렸으나 단교는 하지 않았다.
아랍 국가 중에서는 요르단이 이라크 외교관 5명을 추방함으로써 미국의 요구에 응했지만 35명의 대사관 직원들은 암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예멘 레바논 이집트 등 반전 대열에 섰던 다른 아랍 국가들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라크 외교관들에게 추방령을 내렸지만 명시적으로 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통의 중립국인 이 두 나라가 외교관 추방령을 내린 것만도 극히 이례적이어서 미국의 압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 교황청은 진작부터 대화 창구를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면서 이라크 외교관들을 추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라크전에 적극 협력해 왔던 스페인과 불가리아 포르투갈 폴란드 등도 이라크 외교관들을 추방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외교부는 "미국의 공식 요구는 없었다"면서도 "사실상 이라크와 단교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국과 이라크는 1989년 수교했고 북한은 68년 수교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을 지원, 80년 단교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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