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 강화, 다이어트, 피부노화 방지 등 효과를 선전하며 시판중인 건강기능식품·일반의약품·화장품 등이 절반 이상 효능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는 23일 '영양치료와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전문강좌를 열고, 국내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에 대한 임상연구 유무를 처음으로 확인, 5단계 권장등급을 발표했다.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37가지 효능, 220여종 건강기능식품 등을 대상으로 2,000여개 논문을 검색한 결과 권장할만한 의학적 근거를 갖춘 것이 약 90종(A,B등급), 임상연구가 아예 없거나 효능이 없다고 밝혀진 것(C,D,I등급)이 약 130종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A등급은 '권장할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의미로 위약군과 대조한 이중맹검 임상실험을 했거나 제한된 실험일지라도 여러 결과가 일치한다는 뜻이다. B등급은 '권장할 증거가 어느 정도 있다'는 의미로 동물 및 시험관실험과 인간관찰연구가 함께 이뤄진 경우나, 제한된 임상실험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C등급은 '권장할만한 증거가 있지만 부작용 또한 비슷해 권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러 연구결과가 엇갈린다'는 의미. D등급은 '권치 말아야 할 증거(부작용 등)가 있다'는 것이다. I등급은 '아무 증거가 없거나 증거가 무시할만하다'는 의미로 업자의 주장, 사용자 경험, 동물 및 시험관실험만 한 경우에 해당한다.
체중조절 효과를 선전하는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대체식인 N사 S제품 등이 국내 임상연구를 통해 체중조절효과가 인정(B등급)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식이나 다이어트식·음료 등이 아무 근거 없이 팔리고 있는 것(I등급)으로 드러났다.
피로회복, 정력강화 용도의 건강기능식품은 전형적으로 효능에 대한 근거가 없는 I등급으로 분류됐다. 전통적으로 활력강화, 피로회복제로 꼽히는 로얄제리는 사람에 대한 임상연구가 거의 없고 오히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위험이 있어 함부로 복용해선 안 되는 D등급으로 지적됐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시오가피는 활력강화, 성기능개선 등 효능을 인정한 중국, 러시아의 임상연구가 있으나 위약 비교연구가 없어 I등급으로 분류됐다. 한일병원 박현아과장은 "활력, 성기능은 위약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중맹검연구(연구대상과 위약을 모르게 한 연구)가 아닌 연구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복용되는 정력강화 성분은 '여왕벌이 일벌보다 수명이 40배 길다''아프리카 돼지가 먹고 교미력이 높아졌다'는 등의 신비주의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이 많다"며 "마황, 요힘베 등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으로 금지한 성분까지 인터넷이나 보따리상을 통해 유통될 정도로 남용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암에 대해선 건강기능식품의 연구가 많은 편이나 암의 종류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고 있다. 술을 제한하는 것은 대장암, 유방암에는 효과가 인정되나(B등급) 전립선암, 폐암, 위암, 방광암에는 효과와 부작용이 비슷한 것(C등급)으로 드러났다. 반면 민간에서 암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상어연골은 크게 권장할 만한 효과는 없는 것(C등급)으로 조사됐다.
최근 호르몬대체요법이 유방암 난소암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의 여파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식물성 에스트로젠은 골다공증 치료용으로는 적합치 않은 것(C등급)으로 드러났다.
같은 성분이라도 사용법에 따라 효능의 차이는 크다. 예컨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국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코엔자임 Q-10의 경우 화장품 성분으로는 피부노화를 방지하는 효능이 검증됐지만(B등급), 먹는 식품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I등급)으로 조사됐다.
유태우 교수는 "규칙적이고 균형있는 영양섭취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특효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며 "의사들이 '위장병에 자극성 음식을 피하라'는 권고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의 권장 기준을 명확히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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