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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경계를 넘어 각국 음식 한자리서/"노매딕風" 메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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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경계를 넘어 각국 음식 한자리서/"노매딕風" 메뉴 뜬다

입력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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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맛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새 트렌드, 신조류를 원한다.'종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레스토랑, 메뉴, 주방, 인테리어…. 음식 트렌드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음식 문화의 새로운 컨셉 '노매딕'(Nomadic)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퓨전에서 새로운 음식 문화인 '노매딕'으로의이동은 시작됐다. 최신 유행을 리드하는 미국을 비롯, 일본과 한국에서도 노매딕 레스토랑이 등장해 새로운 물결을 선도하고 있고 유행 리더들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유목민'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돼버린 노매딕은 '유목민들과 같이 자유스러운 정신을 기반으로 국적이나 특정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적인 마인드를 가진 동시에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을 지칭한다. 이 곳 저곳을 찾아 다니기 때문에 자연을 희구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성향도 노매딕만의 특징이다. 퓨전이 말 그대로 '섞는' 데에만 치중했다면 '노매딕'은 이에 반발, '섞여 있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하다'는 이념을 강조한다. 음식 하나하나 조리에서, 인테리어까지 노매딕은 철저하게 퓨전과 차별화한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 신흥 '노매딕'들은 '이제 퓨전(Fusion)의 시대는 저무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라고 답한다.

유행1번지 청담동 산마루길 뒤켠에 최근 문을 연 레스토랑 '타니'. 국내 최초로 노매딕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이 곳의 음식들은 기존의 메뉴와는 궤를 달리한다. 원래 국물이 홍건한 이탈리아식 '국밥'이라 할 수 있는 리조토의 모습도 여기서는 달라진다. 국물이 거의 없는 대신 토마토 소스가 둥그렇게 담긴 쌀밥을 예쁘게 감싸고 있다. 예쁘장한 모양은 프랑스식인데 맛은 본래의 이탈리아 맛에 충실하다. 지배인 조상현(35)씨는 "원칙없이 재료나 맛을 섞어 놓아 무국적 음식이랄 수 있는 퓨전과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일식에 충실한 한국음식 메뉴인 '타니볼' 또한 노매딕 스타일의 음식. 새우나 오징어를 튀긴 것을 일본식 우동국물로 맛을 냈다. 이처럼 모두 50여가지에 이르는 이 곳 메뉴들은 중식 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한식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가끔 이곳을 찾는 이상금(31·영앤어소시에이츠)씨는 "세계곳곳을 다니는 유목민들과 같이 각국 요리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도록 한다는 '노매딕' 정신을 받들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오픈된 키친에서 일하는 일본인 요리사 5명은 에피타이저는 프랑스, 메인푸드는 중식, 디저트는 이탈리아식 등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적절히 섞어 내놓는다.

노매딕 레스토랑의 음식들은 '누션'(Nousian)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을 뜻하는 누벨(Nouvelle)과 아시안(Asian)의 합성어로 아시아 음식을 중심으로 다른 음식이 가미된 퓨전 음식의 보다 발전된 형태를 가리킨다. 새로운 음식,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이다.

친환경적 성향의 노매딕은 또한 자연을 중시한다. 노트북과 인터넷 장비를 들고 국경없이 전세계를 누비는 현대판 '노매딕'들은 바쁘고 정서적으로 메마르기 쉽다. 바쁘고 항상 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타니에서는 실내에 이끼가 낀 냇물이 바닥에 흐른다. 테이블 바로 옆에 꾸며 놓은 대나무 정원도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인공적인 장식물이 주류를 이루는 퓨전의 인테리어와도 차이가 크다.

노매딕의 물결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미 'T8' '봉' 등 노매딕레스토랑들이 등장했고 유사한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T8의 경우 실내장식은 일본풍인데 스테이크는 호주풍이다. 서비스되는 생수는 프랑스산이고 와인은 칠레산과 남아프리카산이다. 접시는 태국 스타일인데 전채요리는 라틴스타일이다. 여기서는 "이런 모든 것들은 이 레스토랑이 얼마나 이국적인 레스토랑인지 증명해 보이고 있다기 보다는 미(美)의 균형있는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욕 홍콩 런던 등에 체인을 두고 있는 '봉' 레스토랑도 흡사한데 이들 레스토랑에 멋쟁이 유행 리더들이 줄을 서며 자리를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다양한 문화와 세력이 뒤섞여 있으면서 하나의 새로운 발전된 문화를 제시하는 것이다.

청담동에 최근 문을 연 '코카게'와 '단스시' 그리고 '친친' 등도 노매딕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는 레스토랑들로 꼽힌다. 코카게는 일본풍을 기본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세계화시킨 맛을 자랑한다. 아메리칸 저패니즈 레스토랑을 주창하는 친친은 '사시미' 위주의 일식을 지양한다. 2년전 오픈, 압구정과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기철(40) 대표는 "한번도 퓨전이라고 주장하거나 생각한 적이 없다"며 "맛에 있어서 기본을 잘하는 식당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식은 2인분 이상이어야 한다'는 상식과 달리 1인분 요리도 무난히 소화하는 것 또한 개인을 존중하는 노매딕 정신에 포함된다.

또 국내 최장인 60m의 레일을 설치한 국내 최대의 회전초밥 레스토랑 '단 스시' 또한 '바쁘게 다니느라 건강을 해치기 쉬운' 노매드족들을 겨냥한다. 김성인(35) 이사는 "테이블 옆으로 설치된 레일에 흐르는 음식들을 집어 먹으면서 종업원들이 건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 또한 새로운 조류"라고 설명한다. 한국외식사업연구소 신봉규 소장은 "한 때를 풍미했던 퓨전 바람이 시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퓨전이후 진공상태에 있던 새로운 트렌드의 자리를 노매딕과 누션이 꿰찰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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