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득권은 법학적 개념이다. 사전적 설명으로는 '개인, 법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를 뜻한다. 사유재산 보호를 확립하기 위해 기득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불가침성이 강조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이런 의미의 기득권 개념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미 획득한 이익은 될 수 있는 대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기득권보호가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노무현 정부의 선거승리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선거결과를 지금까지의 주류 기득권 층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의사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정권의 핵심포스트는 과거 비주류 출신들로 많이 채워졌고, 검사인사 파동을 비롯, 지금 고위 공직사회에 불어 닥친 인사바람도 서열과 기수위주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말하자면 기득권층 부수기라고 할 수 있다. 관료사회를 움켜쥐려는 이 작업에 청와대 '주체세력'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 그러나 이는 대통령이 지휘하는 정부와 관료 분야에서 일 뿐 개혁의 가장 큰 대상으로 꼽혔던 정치 정당 쪽에서는 변화가 없다. 대선 직후 노 당선자는 민주당 연찬회에서 "지구당 위원장은 기득권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정당개혁의 시동을 강조했지만 여러 달 간의 논란 끝에 지구당위원장 폐지를 골자로 하는 당 개혁안은 무산되는 모습이다. 반대론의 핵심은 지구당 없이는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기존 지도체제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당 개혁안을 논의 중이나 중진들과 소장파의 이해대립으로 표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 민주당쪽은 한나라당이 지구당을 유지한 채 총선에 나설 텐데 자신들만 지구당위원장 없는 무장해제 상태에서 싸울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나라당쪽에서는 민주당이 개혁을 완료하고 선거에 나오면 대항 명분도 없이 참패할 것이라고 겁내는 소리가 나온다. 정당에 선거는 지상명제이지만 이런 현실론은 결국 정치권이 기득권 놓치기를 두려워하는 본능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당을 상대로 노 대통령은 기득권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대북송금 특검법을 야당 안대로 공포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그는 민주당 총재도 아니고, '당·정은 분리'이다. 노 정권의 기득권 깨기가 힘겨워 보이는 대목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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