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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27) 아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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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27) 아픈 사랑

입력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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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사람이라면, 안녕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1972년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 기타를 치며 방금 지은 곡을 쓸쓸하게 부르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곡 '석양'이었다.이 노래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듯 한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있었다. 단순하고도 맑은 심성이 인상적이었던 그녀는 내 노래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팬으로 알고 있던 그녀에게서 어느날 연락이 오더니 집을 나와 방을 하나 얻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들어 가라는 설득도 별무소용이었다. 나는 어쩌다 그녀의 거처에 들르게 됐다. 그러나 머잖아 슬슬 자책과 후회가 밀려 왔다. 가정이 있는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서너달, 나는 그만 끝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별을 고하러 갔다. 그런데 그녀가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웃으면서 미리 써 뒀던 편지 한 장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 말 않고 돌아 서서 집으로 와 편지를 뜯어 보았다. 구구절절한 게 시인 지, 노래 가사인 지 구분할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글을 보자 마자 쓴 곡이 바로 '석양'이다.

이 사연은 아내도 모르게 지금껏 가슴속에만 간직해 왔으나, 이 기회에 털어 놓는다. 그래서일까, '석양'에 더욱 애착이 간다. 이 노래의 첫 주인공은 장현이었다. 내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던 그 순간에 운 좋게도 사무실에 들른 그가 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리로 갔지만, 이후 김추자 인순이 등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면서 새맛을 더해 오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키운 여가수들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오해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두고 싶다. 나는 체질상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는 여자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욱 맞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빈약한 외모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 음악 생활을 본격적으로 해오면서부터는 가장 소중한 게 음악이었던 만큼, 여자 문제 같은 것으로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다. 특히 미 8군 생활 이후 '이 동네는 잡음이 나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도 이내 터득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인기인의 숙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이트 클럽 출연은 보통 1달, 길어야 2∼3달이다. 여자들이란 동물성이어서 남자의 육체가 주된 관심사다. 한창 때는 내가 그 점에서 밀린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했으나, 곧 내 음악의 진가를 알아주는 팬들의 힘으로 살아 왔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남자다. 엽전들 시절, 종로의 클럽 이브에서는 모두 남자뿐이었다. 어느 무대가 끝난 뒤, 아저씨 한 명이 나를 찾아 와 '나는 너를'을 가리켜 최고의 명곡이라고 했을 때처럼.

'석양' 이후 나의 대표곡으로 꼽을 만한 것이 김정미의 사이키델릭 곡들이다. 그 중 하나를 뽑으라면 73년의 '해님'을 꼽겠다. 사이키델릭 록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곡이라는 마음으로 썼던 작품이었다. 72년 '간다고 하지 마오' 등으로 특유의 보컬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그녀는 이듬해 '해님'으로 절정을 구가했다.

사이키델릭 록이란 이 현실 세계 내에서 전혀 다른 세계가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 주는 음악이다. 흔히들 갖고 있는 테크노 음악과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트랜스(trance) 상태라는 환각에 탐닉하는 최근의 테크노 음악은 이성을 마비시킨 상태에서의 쾌락을 추구한다. 반면 사이키델릭이란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을 한 바퀴 쭉 돌고 온다는 차원 이동의 음악이다.

김정미의 복각 음반은 이미 석 장이 나와 있는데, 펄 시스터즈나 김추자 복각판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사실 당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곡이었다.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데에는 30여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미 역시 대마초 사건 이후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석양'과 같이 음악 뒤에 숨겨져 있던 일을 처음으로 털어 놓는 것은 음악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다보니 자연스레 나온 것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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