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23일 나치당이 원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독일 국회가 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히틀러는 국회의 동의 없이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됐다. 그 해 1월30일 총리가 된 히틀러가 독일 최고지도자가 된 것은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사망한 이듬해 8월2일 이후지만, 70년 전 오늘 전권위임법이 통과하는 순간 나치 일당 독재 체제는 실질적으로 완성됐다. 그 뒤 독일에서는 좌파 정당과 노조들이 불법화되고, 신문들은 괴벨스가 이끄는 국민계발선전부의 검열을 통과한 기사만을 내보낼 수 있었다.나치의 집권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인 다수결주의의 위험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학술회의장에서의 다수결주의란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나치스의 집권 과정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과정이 보여주었듯, 정치 과정에서의 다수결주의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그 사회에 양식 있는 언론이 없을 때 그렇다.
이라크 전쟁 발발 전후로 세계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반전 시위 도중에 부시 미국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구호도 나왔던 모양이다. 그것은 분명히 지나친 일이다. 그러나 두 세대 전의 유럽 최강국 지도자와 오늘날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행태 사이에 닮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히틀러가 프랑스와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며 비이성적 애국주의로 독일 국민을 묶었듯, 부시도 주로 이슬람권과 연결된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감을 부추기며 미국인들의 애국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부시도, '더러운 무리'에 대한 예방 전쟁으로 자국민의 애국주의에 출구를 만들어주며 세계의 '미화원'을 자임하고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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