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크 알리 지음·정철수 옮김 미토 발행·2만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거쳐 이번 전쟁으로 한 고비에 이른 느낌이지만 미국과 이슬람 국가의 갈등에 마침표가 찍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스라엘의 존재, 석유 이권 등 기본 조건도 그렇지만 양측의 상대에 대한 인식이 이미 극단으로 치달아 한계를 넘은 때문이다. 어쩌면 객관적 조건이 제거돼도 과거의 기억과 그에 따른 적대감만으로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에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고 있는 좌파 지식인 타리크 알리가 지난해에 쓴 이 책은 이런 전망을 더욱 강하게 한다.
미국의 행동양식을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시각에서 보려는 경향은 최근 국내에서도 뚜렷해 졌다. 이런 분위기에 던져진 이 책은 제목으로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처럼 이슬람 원리주의와 미국적 독단주의의 충돌을 다루었으리란 짐작을 낳는다. 그러나 독자는 '아메리코필리아(Americophilia)와 옥시덴털리즘(Occidentalism)을 넘어'란 부제를 염두에 두는 편이 낫다.
'아메리코필리아'는 '아메리카'와 병적인 의식의 경도를 뜻하는 '필리아'의 복합어다. 미국의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식 성향, 그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숭미주의 경향을 가리킨다. 그 대립 개념으로 쓴 '옥시덴털리즘'은 원래 미국 컬럼비아대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가 '서양이 세계 지배를 위한 전략의 하나로 날조한 동양관'이라고 설파한 '오리엔털리즘'의 반대쪽에 있는 '동양이 날조한 서양관'(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샤오메이 천 교수)이다. 이를 저자는 모든 문제를 미국의 탓으로 돌려 버림으로써 자신의 문제에 눈을 감는 이슬람 문화권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 쓰고 있다.
저자는 이슬람 문화와 미국 제국주의를 동시에 비판한다. 그는 비판을 위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진 않는다. 대신 코란, 이슬람과 서구의 문학·철학을 다채롭게 인용하며 7세기 무하마드의 메카 정복 이래 다양한 길을 걸어 온 아랍 각국의 역사로 짠 양탄자를 펼쳐 놓는다. 자신이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파키스탄 라호르의 정치·사회 풍경, 이슬람 세력과 유럽 기독교 세력의 갈등의 역사, 서구 제국주의의 아랍 침탈, 아프가니스탄과 캐시미르의 비극 등도 양탄자의 재료가 된다.
그는 헌팅턴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양탄자 전체를 하나의 이슬람 문명으로 파악한 데 대해 이슬람 세계가 경험한 각각 서로 다른 역사를 들어 비판한다. 이슬람교조차도 예외가 아닌 이런 분열상을 부각, '이슬람 문화권의 구미 제국주의에 대한 통일적 반감'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근거를 허물어 버린다. 같은 맥락에서 서구 제국주의 전통을 이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근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혹독하다.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 언론 등이 일제히 도마에 오른다.
이슬람에 대한 비판도 혹독하다. 유대교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성립 단계에서 이미 정치적 의도와 결합한 이데올로기였다고 지적한다. 18세기 '순수 신앙'으로의 회귀를 주창한 이슬람 원리주의의 원조 무하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조차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을 노리는 이븐 사우드와 제휴, 주변의 아랍 종족에 대한 살육과 약탈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면서 그 구호로 '영구 지하드(聖戰·성전)'를 주장했다고 밝힌다.
그는 여성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 상징하는 사회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이용하는 한편 봉건적 왕권 유지를 위해서는 '거대한 사탄' 미국과도 손을 잡는 아랍 국가의 모순을 질타한다. 또 이런 모순 때문에 지금 미국과 손잡고 있지만 와하브주의의 본거지이자 오사마 빈 라덴을 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폭발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는 미국과 추종국의 숭미주의 변화 가능성에 별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차라리 이슬람 국가가 무조건적 반미주의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순간의 열정에 휩싸인 복수의 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제적이거나 억압적 수단으로 전제나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 광신과 무자비함을 보이며 외곬의 광신주의와 전쟁을 하는 것은 폭력의 순환을 연장할 뿐 정의를 확산시키지도, 의미있는 민주주의를 가져오지도 못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일찍이 신학적 열정에 불탄 서구에서 이런 열정을 능가하고 있는 역동적 근대성'에 주목한다. 그래서 "광적 보수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후진성을 쓸어 버리고, 서구 사상보다 더욱 진보적인 새로운 사상에 이슬람 세계를 개방시키는 이슬람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엄격한 정교분리, 코란의 자유로운 해석, 사상의 자유 등 계몽주의적 실천 과제를 든다. 이성의 힘이 필요한 게 이슬람 국가 뿐일까마는.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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