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서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은 1991년 걸프 전 때 아랍 국가들 가운데 드물게 이라크의 편에 섰다. 그 인연으로 이라크로부터 최근까지 석유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받는 등 이라크와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 요르단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뤄지고 있는 미·영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국민의 90% 이상이 전쟁을 반대하지만 다른 아랍국들이 일반 국민의 반전 분위기를 의식해 내놓는 눈 가리기식 반전 성명조차 없다. 걸프 연안 국가들이 '전쟁 결사 반대'를 외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고 외신은 꼬집고 있지만 그런 제스처라도 요르단에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요르단 정부는 개전 이래 전쟁에 대한 논평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20일 인터뷰를 약속한 아카바항 항만청장은 암만에서 3시간 넘게 달려간 기자에게 "정부가 일절 언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며 "여기까지 왔는데 만날 수 없어 미안하다"고 난처해 했다.
국립 요르단 대학의 한 학생은 "정부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랍 정서 못지않게 현실의 절박한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 때문인지 다른 아랍국과는 달리 반전 시위도 미미하고 전쟁에 대한 관심도 적다. 개전 후 암만은 비교적 담담하고 평온하다. 미군의 공습이 시작된 지 반나절이 지난 시간에 도심 유적지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전쟁이 터진 것조차 몰랐다. 그들에겐 작은 국가가 숙명적으로 안아야 하는 한계와 무력감, 서글픈 체념이 짙게 배어 있었다.
황유석 특파원/암만에서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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