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베일스 지음·편동원 옮김 이소출판사 발행·1만6,000원
노예제는 살아있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끝난 게 아니다. 미국 출신 사회학자 케빈 베일스는 세계 도처에 약 2,700만 명이 노예 상태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회용 사람들'은 현대판 노예제의 끔찍한 실태를 고발하는 생생한 보고서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취재해 쓴 이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는 과거의 노예는 값 비쌌기 때문에 최소한 함부로 '낭비'되지는 않은 반면, 현대의 노예는 너무나 값싸고 흔한 소모품이기 때문에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폐기'되는 '일회용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노예제는 번창하고 있는 사업이며 노예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종일 침침하고 좁은 곳에 갇힌 채 축구공을 만들다 실명한 한 인도 소녀는 지난해 월드컵 기간 중 서울에서 어린이 노예 노동의 참상을 증언한 바 있다.
이 책은 이들 어린이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노예가 선진국을 포함해 전세계에 존재하며, 그 실상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비참하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끔찍한 것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는 세계화 시대의 무차별 압력에 의해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신발 카펫 설탕 등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물건 중 전세계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생산되는 것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책은 하루 12시간씩 진흙 벽돌을 만드는 데 혹사당하는 파키스탄 어린이부터 가난 때문에 노예 신세로 전락한 인도 농민, 빚에 팔려온 어린 소녀들의 눈물로 얼룩진 태국 매춘산업, 감옥이나 다름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브라질 노동자, 전통적인 노예제가 여전히 지배하는 아프리카 북부 모리타니의 현실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저자는 노예제가 '누군가의 노동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도둑질하는 죄악'이라고 역설하면서 책의 마지막 7장을 현대판 노예제를 끝장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바치고 있다.
그는 노예제 폐지는 인권운동가나 정부의 의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대목의 논의는 노예제를 고발하고 감시하는 국제 연대 활동의 강화 등 다소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어 아쉽다. 그러나 노예가 사라졌다고 믿고 무관심하게 지나친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케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한국 독자들은 특히 우리는 과연 노예제라는 범죄 행위로부터 자유로운지 묻게 될 것이다.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딸들이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됐고, 지금은 동남아 등에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 상당수가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부려지는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케빈 베일스는 현재 영국의 서리 로햄턴 대학 교수로, 유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글로벌 계획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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