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9일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 자료라며 폭로한 내용 중 일부가 도청이 아닌 감청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도·감청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폭로 내용 가운데 두 건은 실제 통화가 이뤄졌다"면서 문제의 통화 내용 중 한나라당의 폭로 문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부분을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통화 내용의 뒷부분을 고의로 누락시킴으로써 정치공세 차원에서 의혹을 증폭시켰다"고 주장했다.청와대측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 사장, 김현섭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이에 있었던 통화 내용을 알게 된 경로는 다음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감청 목록과 내용을 이미 청와대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해외 부분은 국익이 걸린 사안이 많은 만큼 모든 나라가 합법적 감청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문제가 된 두 건은 모두 국제통화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측은 국정원의 감청에 대해 이미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혹 있었을 수도 있는 도청 사례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가에서는 국정원 실무자의 과잉의욕 때문에 상부에 보고 없이 도청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20일 "국정원으로부터 도청은 일절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 더 아는 내용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보고 내용이 너무 부실했기 때문에 오히려 국정원에 대한 청와대측의 불신감이 커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현재 진행중인 검찰의 수사상황이 청와대에 흘러갔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의 핵심 포인트나 방향이 권력 중심부에 전달됐을 상황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날 국정원의 감청 가능성을 언급했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검찰수사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함에 따라 가능성은 적어졌다.
청와대측이 통화 당사자인 박 전 비서실장이나 김 전 민정비서관에게 직접 들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해명이 논란의 여지가 가장 적기 때문에 청와대측은 당연히 "본인들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위 관계자는 "폭로 문건 가운데 맞는 것은 두 건 뿐이고 나머지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는 들어서 아는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여전히 속 시원한 해명은 되지 않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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