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이 멎고 먼지가 가라앉은 뒤가 문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목적이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을 넘어서는 중동질서 재편에 있는 만큼 국제적 관심이 미국의 전후 전략에 쏠리고 있다. 미국의 중동질서 재편 구상은 먼저 이라크에 친서방적 민주정부를 수립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아랍 각국에 민주체제를 확산시킨다는 것. 이른바 도미노 이론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무엇보다 첫번째 도미노 칩인 이라크의 전후 체제 이행과 안정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망은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직면할 과제는 이라크 국민의 뿌리깊은 반미정서 및 분파주의, 전후 복구비 등 자금확보, 주변 아랍국들의 반발 등이다.
미국이 승리한 후 군정을 실시할 경우 미군은 이라크 국민에게 증오의 대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 국민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금수조치를 통해 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주범이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협조해 온 쿠르드족의 지분 요구도 난제중에 하나이다. 이라크 다수 주민과 쿠르드족의 깊은 괴리감을 감안할 때 쿠르드족의 요구는 이라크 주민의 분노를 확대시킬 수 있다.
씨족과 파벌의 분거상태를 완화하고 40만 군대와 8만 명 규모의 경찰을 해체해 재구성하는 것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은 후세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공화국수비대를 제외한 기존의 이라크 군을 전후체제 수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라크 군을 미 군정 당국의 하부조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라크 군이 후세인 측근세력에 의해 통제돼 온 점에 비춰볼 때 미군이 이들을 포섭하기는 쉽지 않다.
천문학적 액수가 투입돼야 하는 전후복구와 체제 이행비용 조달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군대 10만 명을 주둔시킬 경우 한 해 2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외에도 기본적 인프라 복구비 250억 달러와 기타 복구비용, 최소 주민 구호비용 25억 달러 등을 합하면 적게 잡아 1,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은 해외의 이라크 동결자산 수십 억 달러와 석유판매 대금 등을 활용할 계산이지만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특히 석유판매는 당장 자금화가 어렵다는 점이 있다. 전쟁 중 유전이 파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격적 생산을 위해서는 인프라와 채굴시설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크의 재건과 체제개혁 작업은 고통스럽고 장기적인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는 최근 이라크의 전후 안정화에 최소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후 안정화가 지체될 경우 이란 요르단 쿠웨이트 사우디 등 인접국을 향한 이라크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특히 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중동질서 재편이 미국의 의도라고 의심하는 주변국들은 미국의 이라크 재건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CSIS의 존 알터만 중동 프로그램 국장은 "주변국들은 전후 이라크가 취약하고 분열된 상태로 남아있기를 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IIA도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도 불구하고 중동 역학구도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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