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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지하철, 달라진 게 무언가

입력
2003.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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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서울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는 9개월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교훈을 무시한 데 대한 징벌이었다. 성수대교 사고는 부실하게 지어진 다리가 힘에 겨운 하중을 이기지 못해 무너질 징조가 일어났지만, 관리 책임자들이 이를 무시해 인명피해를 막지 못한 '한국병'의 전형이었다. 5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삼풍 백화점 참화는 이 땅의 모든 부실 구조물과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엄중한 경종이 되었다.그런데도 삼풍 백화점은 관심이 없었다. 이 건물은 설계도도 없이 착공부터 되었고, 시방서를 무시한 날림시공, 잦은 설계변경 등 '부실 백화점'이라 할 만큼 엉터리로 지어졌다. 그런데도 허가당국은 주저 없이 준공검사 도장을 찍어 주었고, 그 뒤 업주는 불법증축 용도변경 같은 자살행위를 일삼았다.

대구 지하철 참사 한 달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세상이 그 때와 너무 닮은 꼴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로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그 기억은 우리의 뇌신경에서 멀리 벗어났다. 신문과 TV 뉴스에서 그 사고와 관련된 보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다 실려도 단신 수준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유족들이 제발 관심 좀 가져 달라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을 걸어서 왔을까.

곳곳에 널려있는 위험요소가 방치돼 있는 것도 그 때의 복사판이다. 우선 전동차 내부의 가연성 물질이 하나도 제거되지 않아 하루 수 백만 명의 승객을 불안하게 한다. 없애기는커녕 전동차 안, 역 구내 벽면과 기둥 등에 가연성 재질의 광고물이 더 늘어나고 있다. 비상구 표지등의 밝기를 높여 유사시에 잘 보이도록 하는 간단한 조치 하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탈 때마다 제발 무사해 주기를 빌게 되고, 내릴 때는 용케 무사했구나 싶어진다.

이틀이 멀다 하고 일어나는 갖가지 지하철 사고와 고장을 겪고 나면, 더욱 살아있는 게 천행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려, 가능하면 기관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맨 앞 차량에 타는 버릇이 생겼다. 어쩔 수 없어 중간 차량에 타더라도 출입문 가까이 서 있으려는 심리, 그러고도 비상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심초사가 현대 한국인들 정신건강의 현주소다.

지하철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건설한지 오래 돼 설비가 낙후한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제외하고는, 전국의 지하철과 전철이 기관사 1인 승무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운행시간을 새벽 1시까지 연장하고도 인력 충원이 되지 않아 사고 위험성이 높아졌다. 신규 채용없이 다른 파트에서 빼낸 인원으로 기관사 수만 늘린 때문이다. 차량 정비와 선로보수 같은 부서는 일할 시간도 인원도 줄어 안전이 심각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지하철 공사 자체 안전점검에서 무려 1,236건의 문제점이 발견됐으니,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요행이라 할 것인가.

한국 지하철은 세계에서 값싸고 빨리 건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탓인지 전동차와 각종 설비 역시 가장 싸구려다.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들도 한 대에 16억원이 넘는 전동차를 우리나라에서 수입해가는데, 우리 지하철에 공급되는 것은 반값도 안 된다. 그러고도 계속 예산 타령이다. 서울지하철공사는 1∼4호선 전동차 좌석을 불에 안 타는 소재로 바꾸는 것을 포함한 종합 안전대책 추진에 1조 3,000억원이 소요된다면서 바꾸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구에서 관계장관 회의가 열린 것이 한 가지 달라진 모습인가. 겉 모습의 변화보다 당장 필요한 것이 무언지 가려내 확 바꾸는 것을 보지 않는 한, 아무도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말 좀 마음 편하게 살아볼 수 없을까.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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