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투기들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강타한 20일 낮. 본지 체육부에는 한 축구팬의 전화가 걸려왔다. "세계청소년축구대회(당초 25일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개최 예정)는 어떻게 되나요." "이미 7일 무기한 연기 결정이 나왔고, 기사도 나갔어요." 이 독자는 "전쟁 때문이군요"라며 한숨까지 내쉰 뒤 전화를 끊었다. 독자의 전화를 받곤 이 대회 연기가 결정되던 당시의 허탈감이 되살아났다. 지옥훈련을 감수해 온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취재 준비에 한창이던 기자들도 닭 쫓던 견공 꼴로 됐다. 팬들은 시원스런 골 장면 관전기회를 무기한 연기해야 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은 "관중의 안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지만, 참가예정국에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 영, 스페인이 포함돼 있었던 점을 보면 연기 배경 또한 매우 '미국적'이었던 셈이다.스포츠에 불어닥친 전쟁의 먹구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5,2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취소됐다. 급기야는 여자농구 한·일챔피언십경기(23일 서울, 26일 도쿄)가 같은 이유로 취소돼 안방에까지 전쟁의 불똥이 튀었다.
아랍의 한 나라가 쑥대밭이 돼가고 있는 와중에 스포츠 얘기를 들먹인 건 명분이 매우 약해 보이는 전쟁이 가치중립적인 스포츠까지 중단시키고 있는 현실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팬은 소수다. 반면 스포츠의 팬은 훨씬 많은 다수다. 그러나 다수가 소수의 총질 때문에 천장만 쳐다봐야 하는 모양새는 더욱 안타깝다. 스포츠는 계속돼야 한다. 다음달 5일 이라크와 베트남의 2004아테네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당초 예정대로 바그다드에서 열리기를 기원하는 것은 기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이종수 체육부 기자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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