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03 프로축구 K리그를 120% 즐기는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수비축구의 묘미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 또는 수비를 요리 조리 제치고 재치 있게 차넣은 볼이 네트를 가르는 순간 그라운드를 찾은 보람을 느끼는 팬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골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볼이 골문으로 향하기만 하면 눈을 부릅뜨게 된다. 그러나 용병 최고의 골잡이 샤샤와 지난해 득점왕 에드밀손, 토종 골잡이 우성용을 어떻게 막느냐를 관심있게 지켜보면 어렵게만 보이는 수비전술도 쉽게 읽을 줄 알게 된다.수비축구의 중요성은 한일월드컵 때 잠시 주목을 끌었다. 포르투갈과의 D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송종국이 루이스 피구를 악착같이 마크하던 모습은 많은 축구 팬들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진공청소기 김남일과 홍명보―김태영―최진철 등 스리백 라인은 안정환 같은 스트라이커 못지 않게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월드컵 때 수비가 부각된 건 그만큼 한국이 강팀들과 맞붙었기 때문이다. 강팀에 맞서 무작정 공격만 퍼붓다가는 크게 패하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다. 흔히 빗장수비의 이탈리아 경기는 재미없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축구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멋있는 플레이가 꼭 공격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국내 최강 성남과 세계 최고 명문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는다고 생각해보자. 성남이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나우두와 피구, 지단의 공격을 어떻게 봉쇄하느냐가 더 관심사가 아닐까.
그런데 국내 리그에선 팬들의 눈높이가 달라진다. 수비벽을 조금 두텁게 쌓으면 '팬 서비스는 뒷전인 채 성적에만 연연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3―2 펠레 스코어 정도면 몰라도 4, 5점 차 이상으로 골 풍년이 든다고 재미가 더해지는 건 아니다.
한마디로 전후반 90분 내내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트라이커에만 시선을 집중시킬 게 아니라 그 스트라이커의 발목을 묶어 놓으려는 수비 움직임도 함께 봐야 한다. '축구는 골이 많이 나와야 제맛'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야 한다. 해외에 진출한 홍명보와 송종국, 김남일의 빈 자리를 메우는 수비스타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전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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