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33)의 연기가 재미있는 것은 그의 말과 얼굴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허술한 농담과 진지한 얼굴 표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화학 작용은 '차승원표' 코미디의 핵심이다.얼굴 표정만 진지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있는 원칙론자이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 제작 좋은영화)의 홍보를 위해 각종 오락 프로그램과 인터뷰로 눈 코 뜰 새가 없지만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는다. "저야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은 저를 처음 만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투덜거리면 그건 한마디로 싸가지 없는 거죠." 그리고는 이렇게 농담으로 슬쩍 덮는다. "아, 영화사가 말이예요. 포스터에 '가장 바람직한 배우상을 보여준 배우', 이런 문구 하나 넣어주면 안되나."
'선생 김봉두'의 봉두는 '봉투'를 살짝 바꾼 이름이다. 촌지를 밝히다가 오지로 쫓겨난 교사가 학교를 폐교시키고 서울로 복귀하려는 야심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코믹하다는 말과 재미있다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의 드라마가 기막힌 영화예요. 개봉되면 모든 게 알려지겠지만. 영화 촬영이 한 참 지나고 나서 집사람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코믹한 게 아니라 재미가 있다'고 말하던 걸요."
'선생 김봉두'가 배우 차승원에게 중요한 것은 단독 주연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는 모두 "이건 되는 영화"라는 주위의 확신에 힘입어 선택한 영화지만, 이건 달랐다. "또 코미디냐" "이젠 좀 다른 영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적잖게 들어야 했다. 과거엔 "네가 어떻게 코미디를 하느냐"를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시나리오를 보는, 그것이 영화화하는 과정을 예측하는 안목을 시험하는 영화가 될 것이므로 그는 요즘 내심 초조하다.
이전 세 편의 코미디 영화 파트너였던 이성재, 설경구, 김승우와는 영화 촬영 후 절친한 사이가 됐다. 그러나 여배우들과는, 김혜수나 송윤아와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 말고는 뜸한 편이다. 누군가가 "마초 가스에 그을린 카리스마'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그래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저임금으로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영화 스태프들과 한 몸이라는 인식이 없는 배우는 싫어요. 현장에서 할리우드 대배우처럼 행세하는 배우, 잘 짜여진 판에 돌을 던지는 배우는 더욱 싫고요. 게다가 싫은 사람과 굳이 맞추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주로 여배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란다.
'한 성질' 하는 편이지만 그와 영화 현장에서 불화를 빚었다는 배우는 없다. 김승우는 "현장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를 띄워 주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경구형은 누가 뭐래도 우리 배우 중 1인자다. 그를 이기려고 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연기는 리액션(반응)이다. 반응만 잘 나오면 자기 액션(연기)은 그냥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감에 넘치는 농담도 잘 하지만 속은 꽤 내성적인 데다 자의식도 강해서 하루에 30분씩은 "미칠 것 같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연기엔 도대체 답이 없다는 게 그를 더 화나게 한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각각 중학교 때 가출했지만 매달 노모에게 생활비를 부쳐 주는 아들, 그럴 듯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모에게 여전히 밥 얻어 먹고 사는 아들에 비유한 그는 "한 가지라도 잘하자"는 게 신념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더 완성도 높은 상업 영화에 매달려 볼 생각이다.
그는 아들 노마(14세)의 학부형. "촌지를 주거나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없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게 하지, 촌지 주고 다니게 하고 싶진 않다."
생후 45일된 딸 예나 얘기가 나왔다. "왜 미국은 남의 딸이 태어난 해에 전쟁을 하려고 하는 거죠. 기분 나쁘게."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전 메시지를 띄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차승원스럽기는.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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