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의 가슴을 흔드는 강렬한 영상, 눈 코 입이 없는 인간 군상들이 전하는 압도적 슬픔.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에서 무엇보다 와 닿는 것은 그림 '레퀴엠'이다.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하는 화가 신순남(75·사진)의 삶과 작품세계를 1937년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담아낸 '하늘색 고향'은 그림 '레퀴엠' 속에서 슬픔에 잠긴 이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색 고향'은 정공법으로 내레이션 없이 우즈베키스탄 한인들의 증언과 신 화백 인터뷰, 그리고 자료 화면으로 이루어졌다. 세련된 편집은 아니지만 다듬지 않은 거친 영상이 한인들의 아픔과 신 화백의 그림, 가슴을 파고드는 현악기 선율과 어우러져 장엄한 진혼곡을 울린다.
신 화백은 "우리는 노예였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다. 그래서 '레퀴엠'에 난 얼굴을 그려넣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얼굴 없는 한인의 모습은 어둡고 절망에 가득 차 있다. 가족을 땅에 묻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묘지에 모여 있는 광경이 '레퀴엠'을 뒤덮고 있다.
20여만 명의 한인들이 화장실도 식당도 없는 화물열차에 실려 황량한 중앙 아시아 땅으로 옮겨졌고, 그들은 가족을 땅에 묻지도 못하고 가족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돌아다닐 수도 없는 암울한 세월을 맞아야 했다. 그들의 증언과 '레퀴엠' 속의 주인공을 교차시키면서 '하늘색 고향'은 한인의 아픔을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신 화백의 증언대로 "빛도 없고 어둠만 존재했다. 우리는 살아있는 시체와 같았다"는 '고려인'의 삶이 그의 그림 속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른다.
김소영 감독은 1997년 현대미술관 '신순남 한국특별전'에서 33년 만에 완성된 '레퀴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이후 4년간 매달려 이 영화를 만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대만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등을 수상했다. 21일부터 나흘간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극장에서 상영된다. 전체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