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가 미국의 침략 위협과 강압을 잘 극복하길 바란다." 이집트 의회의 한 중진의원이 얼마 전 이집트를 방문한 우리 국회 대표단에게 언급한 말이다. 이에 우리측 통역이 "우리는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귀뜸하자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 정세가 위험해지면 남·북한이 모두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며 화제를 바꾸었다.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동 여러나라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곧 군사공격을 감행한다는 걱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미국이 '핵개발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핵개발은 물론 대량 파괴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한 이라크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동의 여러 나라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믿으면서도 미국―이라크 전쟁 방지에 최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아랍 국민들의 높은 관심은 미국이 아랍지역에서 대중적 인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다수의 아랍인들은 9.11 사태라는 엄청난 테러 공격을 당한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9.11 테러를 감행한 소수의 테러범 때문에 아랍인들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분명히 억울한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야속하게 여긴다.
초강대국인 미국을 이처럼 경원시하고 있는 가운데, 핵개발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온 북한의 벼랑 끝 초강수에 대한 아랍인들의 생각은 복합적이다. 북한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다며 어리둥절해 하기도 하고,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에 야릇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며, 북한 핵문제라는 두통거리(?) 덕분에 이라크로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관심이 행여 조금이라도 분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전체 원유 중 77%는 중동산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원유 수입량이 9억 배럴에 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유가가 배럴 당 1 달러만 올라도 우리 주머니에서 연간 9억 달러가 추가 지출된다. 현재 유가는 배럴 당 30달러를 크게 초과하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이 개시되고 중동 정세가 혼미해져 유가가 배럴 당 40∼50달러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는 위축되고 우리의 수출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면 유가가 안정되고, 세계 제2위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이라크가 막대한 재원을 들여 대규모 건설사업을 발주할 경우, 우리 건설업계도 활발히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동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곳이며,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친선을 강화하고 우의를 다져나가야 할 외교의 한 축이다.
이라크 전쟁을 목전에 두고 중동과의 관계 및 북한 핵문제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어찌 보면 아랍 국가들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셈이다. 중동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중국· 러시아 등 열강의 세계전략에 있어 최우선 순위를 점하고 있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하고 활발한 협상이 이루어 지기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라크전쟁과 그에 따른 중동 정세의 추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전운이 짙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중동지역은 우리의 국익 증진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중요한 국제 정치 현장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오 윤 경 주 이집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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