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3월20일 한국에서 민간 전화 업무가 시작됐다. 1898년 서울 덕수궁의 궁내부(宮內府)와 각 아문(衙門) 그리고 인천의 감리소(監理所) 사이에 전화가 처음 개통된 이래 네 해 동안 전화선은 정부 기관이나 각국 공사관에만 가설돼 있었으나, 이 날부터 일반인들도 전화기를 자기 집에 설치해서 상대방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서울·인천·개성 세 곳에 공중전화기도 설치됐다. 전화 요금은 시내·시외를 막론하고 5분 한 통화에 50전이었다. 당시의 전화기는 에릭슨사(社)의 자석식 단식 교환기와 벽괘형(壁掛型) 전화기였다.초창기 전화 가입 신청자들은 주로 외국인 상인들이었을 뿐, 일반 조선인들의 전화 가입 신청은 매우 저조했다. 그 시절 공중전화기 옆에는 통신 공무원이 지키고 앉아 통화자를 감시했다. 전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대화하는 것을 빌미로 서로 욕설을 퍼붓는 등 공민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외국인들은 이를 두고 도청이라며 격렬히 항의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제일의 '전화국가'다. 전화자동화율 100% 달성과 함께 회선 1,000만을 넘긴 것이 16년 전이고, 휴대전화의 기술과 생산·소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초창기의 전화는 덕률풍(德律風)·득률풍(得律風) 또는 전어기(傳語機) 따위로 불렸다. 덕률풍과 득률풍은 유럽어 '텔레폰(telephone)'을 중국인들이 음사(音寫)한 것이다. 통신공무원의 감시 아래 주뼛주뼛 '공중전어기'를 만지작거렸던 한 세기 전의 한국인들이 아무데서나 조그만 손전화기에 대고 끊임없이 뭔가를 주절거리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본다면 놀라움을 넘어 공포를 느낄 것이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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