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글·권인수 그림 명예의전당 발행·7,500원·초등 저학년
남의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굳게 다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말수가 적어서 '무거운 입'으로 통하는 초등학교 4학년 현상이. 반 친구들은 현상이를 믿고 여러 가지 비밀을 말해준다. 현상이는 그 바람에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남자애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여자애가 누구인지, 인기짱인 소연이가 누굴 좋아하는지, 성호는 1초에 엉덩이를 몇 번이나 흔들 수 있는지, 힘이 세서 늘 대장 노릇을 하는 재완이가 어릴 때 똥싸개였고 자기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현상이는 처음엔 그런 게 싫지 않았지만, 점차 비밀을 지키는 데 힘들어 한다.
그러던 중 재완이의 비밀이 새어나간다. 누가 퍼뜨렸을까. 친구들은 현상이를 의심한다. 현상이를 '가벼운 입'이라고 놀리고 따돌리고 감시하기까지 한다. 현상이는 누가 그랬는지 알지만, 억울한 누명에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자꾸 캐묻고 때리기까지 하는 친구들에게 현상이는 딱 한 마디만 한다. "나는 무거운 입이다!" 라고.
영등포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이명랑(30)씨의 첫번째 어린이 소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해서 나온 생생함이 두드러진다. 신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인지, 굳이 딱딱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게 알려진 뒤 외톨이가 된 재완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쓴 일기장에는 서러운 마음이 뚝뚝 묻어있다. 재완이의 일기장을 본 선생님이 아이들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현상이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재완이도 예전처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 성격이 뾰족하다고 해서 별명인 바늘공주인 이슬이는 현상이에게 두터운 입술 모양 브로치를 선물한다. "한 번 무거운 입은 영원한 무거운 입이다"라는 편지와 함께.
최근 연작소설 '삼오식당'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 이명랑씨는 걸쭉한 입담과 거침없는 문장으로 소설가들 사이에서는 '여자 성석제'로 불리기도 한다.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에 어린 독자들도 푹 빠질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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