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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에서 스타로 '시카고'/"어차피 인생이란 한바탕 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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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에서 스타로 '시카고'/"어차피 인생이란 한바탕 쇼 같은 것"

입력
200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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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기 직전의 불빛이 가장 밝듯 1920년대의 시카고는 과잉 호황의 상징처럼 휘황찬란했다. 재즈와 술, 담배, 그리고 살인과 부정이 넘쳤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카고'(Chicago)는 시대의 희생자이며 수혜자인 앙큼한 두 여자의 삶을 변주한다.

무대를 휘어잡는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의 '올 댓 재즈'가 끝날 무렵, 그녀는 부정한 남편과 동생을 죽인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다. 바로 그 날, 록시 역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배우를 시켜주겠다고 꼬드긴 정부에 속은 것을 안 록시는 총으로 남자를 죽인다.

두 여자는 감옥에서 전혀 다른 처지이다. 벨마는 여전히 엄청난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고, 록시는 벨마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록시의 남편이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을 고용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은 역전된다. 대중은 무대가 아니라 감옥에서 탄생하는 '스타'에 더욱 열광했다. 적어도 1920년대 시카고에서는 그랬다.

쇼 비즈니스의 생리와 당시 시카고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가치관은 두 사람의 스타를 만들었다. 시카고의 생태를 가장 영악하게 이용하는 변호사 플린, 순진한 배우 지망생에서 세상을 갖고 노는 영악한 스타가 되는 데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은 록시. 스타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도 있다. 벨마는 무대에서 스타였고 감옥에서도 그랬지만, 록시가 뜨면서 그녀는 곧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미 브로드웨이에서 80여년 간 공연돼 온 동명 뮤지컬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화려함과 판타지를 강조한 구성을 통해 풍성하게 새로 태어났다. 입과 몸의 향연을 만끽하는 것이 뮤지컬이라면 캐서린 제타 존스는 존재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다. 흐벅진 몸매에서 터져 나오는 육감적이고 절도 있는 춤과 검은 머리, 입 꼬리가 약간 비뚤어진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매력적인 노래는 '시카고'라는 만찬의 메인 요리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비하면 왜소해진 르네 젤웨거는 극중의 배우 지망생 수준에 걸맞게 노래와 춤이 아마추어적이다. 이제는 노쇠한 느낌의 리처드 기어는 춤과 노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자신이 스타라고 주장하는 록시에게 "그 스타가 사형 당하면 언론은 더 좋아할 것"이라고 비틀어 버리는, 돈 밝히는 '미스터 마우스피스'라는 별명의 변호사 캐릭터는 꽤 매력적이다. 빌리가 록시와 언론을 조종하며 말 그대로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대목도 깜찍하다.

6명의 여자들이 부르는 '셀 블록 탱고(감옥 탱고)'는 신선한 샐러드 같다. "내가 지쳐 집에 돌아갔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풍선껌을 말이야, 씹는 것도 아니고 빵빵 터뜨리잖아, 그래서 죽였어" "그놈에게는 여자가 셋이나 있었어. 쳇 몰몬교도라나" 라는 식으로 자신의 살인 동기를 노래로 부르는 대목은 압권이다. 살인하고도 살아 나온 두 사람이 살인극을 패러디한 'I Move On'을 부르며 재기에 성공한 대목은 악질 간수 마마의 말을 증명한다. "시카고에서 살인은 쇼야."

23일(현지시간) 열릴 75회 아카데미 영화제에 작품상, 감독상(롭 마셜), 여우 주연상(르네 젤웨거), 조연상(캐서린 제타 존스, 퀸 라티파) 등 12개 부문에 13명의 후보를 낸 '시카고'는 몇 개의 상을 타든 '영화는 쇼'라는 본연에 충실한 작품이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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