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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25)예술성, 또는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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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25)예술성, 또는 인기

입력
200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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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호응을 확인한 나는 뮤지션들을 위한 곡도 만들고 싶었다. 1969년 발표했던 '늦기 전에'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썼던 곡이다. 나의 여타 작품과 달리 리메이크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입증한다. '늦기 전에'를 보면 너무 단순하니까 너무 어려웠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빈 공간이 커 바꾸느니, 아예 창작하는 게 편했을 것이다.'늦기 전에'는 동생 신수현의 소개로 나를 찾아와 말없이 기다리곤 했던 김추자에게 처음으로 줬던 곡이다. 이 작품은 한국 가요로는 처음으로 느린 박자(slow beat)를 도입했던 곡이다. 흑인 리듬 특유의 느림 속에서 연주자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자기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지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덩키스 등 나의 그룹들이 이 곡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도취돼 가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대중의 환호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대중 음악계에도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연습 때면 내가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름의 즉흥도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하지 못 할, 뮤지션들끼리만이 아는 어떤 분위기다. 그 곡만 떠올리면 나는 김추자라는 보물을 잊을 수 없다. 느려서 오히려 까다로운 박자에다 타령조 창법까지 두루 떼냈던 그녀가 아니고서는 소화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마이너스였을 지 모른다. 나의 작품들은 대개 리메이크됐지만 그 곡은 높은 관심을 끌었는데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추자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재원이었다. 이듬해 나왔던 '님은 먼 곳에'는 그녀의 폭발적 인기를 입증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로 시작되는 가사는 앞서 밝힌 대로 TBC-TV가 방송 이틀 전에 주문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나 주제곡이나 당시는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1년 뒤 LP로 나가자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대중에게는 낯선 재즈 코드를 쓴 까닭에 귀에 익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TBC에서 우연히 마주친 8년 선배 이봉조씨가 나를 부르더니 "이걸 자네가 작곡했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생각이 난다. 내 행색과 참신한 코드 진행은 사실 어느 누가 봐도 어울리는 구석이 없었을 것이다. 이 곡은 2002년 조관우가 특유의 고음으로 리메이크해 새삼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그는 데모 CD를 들고 매니저와 함께 나를 찾아 와 허락을 얻어 갔다.

다음 히트곡은 '미련'이다. 임아영은 언니와 함께 내 사무실로 찾아 와 시험 끝에 김추자 이후 주자로 픽업 됐다. 그러나 '마른 잎' 등과 함께 발표했던 그 곡이 반응을 얻지 못하자 곧 시집을 가 버렸다. 사실 한 번 취입으로 스타가 될 거라고 여기는 신인 가수 대부분의 생각은 큰 오해다. 내 사단의 대표적 가수인 펄 씨스터즈나 김추자 등이 스타가 되기 위해 얼마나 꾸준히 노력했는 지 당시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한 동안 주인 잃은 신세가 된 그 곡은 72년 바리톤 가수 장현이 불러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그가 첫째 판 '기다려주오'를 내고 난 뒤었다. 나는 박인수가 사라지고 후속 남자 가수가 없어 초조하던 터였다. 사정을 간파한 장현은 거의 매일 집에까지 와서 그 작품을 달라고 졸랐다.

둘은 정반대의 인물로 특히나 불화가 심했다. 천재적 소울 가수 박인수가 장현을 무시했다는 표현이 옳다. 장현은 나의 세세한 주문에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나온 장현판 '미련'은 결과적으로는 대히트였다. 그 해 라디오 상을 휩쓰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장현은 성취욕이 강했던 사람이다. 그의 히트곡으로 알려져 있는 '나는 너를'은 원래 1970년 서유석에게 주었던 것인데, 그가 탐을 내 6개월 뒤 부르게 했던 곡이다. 그 음반도 히트를 터뜨린 장현은 곧 바로 나와 연락을 일절 끊었다.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런데 록을 지향했던 나와 일견 정반대일 듯 싶은 통기타팀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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