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수집가 여승구(67·한국출판무역주식회사 대표)씨가 '책·책과 역사'를 주제로 20∼24일 세종문화회관 신관 2층 전시장에서 고서 전시회를 연다. 21년간 모은 10만 여 점 가운데 1,600여 점을 한국사의 빛과 그늘, 한국의 고활자 인쇄문화, 한국과 세계의 불경, 한국과 세계의 성서와 찬송가, 한국의 교과서, 책 수집―그 끝없는 블랙홀 등 6개 분야 40개 소주제로 선보이는 자리다.그는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책을 인쇄한 위대한 민족이면서도 수많은 전란과 외세의 침탈로 역사의 왜곡과 단절, 훼손을 겪어 왔다"며 "책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을 중국령으로 표시한 프랑스 고지도, 매국노 이완용이 쓴 천자문, 일제가 물러간 총독부 건물에 미 군정 당국이 성조기를 게양한 사진 등 민족사의 수모를 보여주는 자료와 함께 구텐베르크 성서(1440∼1445)보다 앞서 여러 활자로 인쇄된 우리나라 고서, 대마도가 우리 땅으로 표기된 고지도 등을 나란히 전시하는 데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구한말 캐나다 선교사 TS 게일이 번역한 번연의 '천로역정' 초판본(1895),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가로 세로 1㎜의 스코틀랜드 좁쌀책 '올드 킹 콜'(Old King Cole), 조선시대 교과서라고 볼 수 있는 '명심보감'의 초간본(1454) 등 많은 희귀본이 나온다.
40년간 외국서적과 간행물 수입 등 출판무역에 종사해온 그가 고서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82년. 한 수집가가 맡긴 한국 현대문학 초판 200여 권을 경매에 내 놓았다가 박물관을 차리라는 권유를 받은 것을 계기로 국내외 고서점을 수없이 들락거렸다. 그러나 국보나 보물급 수집은 그의 관심사 밖이다. 돈은 되지 않지만 책의 역사를 아는 데 필요하다 싶은 것을 죄다 모았다. "국보나 보물만 중요한 게 아니고, 잔챙이라도 쭉 꿰어놓으면 역사가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고서가 상할까 봐 일일이 파란 천을 입힌 딱딱한 표지로 포갑을 하고 손수 붓으로 제목을 써서 붙이는 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해왔다. "책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이자 역사를 증언하는 기록이며 여러 분야 장인들이 힘을 합쳐 제작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며 "책은 사랑받아야 하며 포갑은 고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책 박물관 설립과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알리는 국제 출판이다. "여기 저기 흩어진 고서를 한데 모아 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하나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시회 문의 (02)734―6071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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