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 네 번째 창작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를 냈다. 신인 작가 시절엔 내가 쓴 소설이지만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온다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 마흔이 넘고 마흔 중반에 이른 후부터는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올 때마다 이게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압박해오는 내 삶의 덫은 아닌지, 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내 작품 역시 그만큼 우리 삶에 대한 깊이를 담고 있는 것인지 자꾸 자신과 작품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네 번째의 창작집이 나오던 그날 초등학교 동창 모임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대관령 아래의 한 작은 시골 마을 학교의 전체 졸업생 50여 명 가운데 스무 명 정도가 참가하는 아주 작은 게시판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로 얼굴을 알기 시작했으니 얼추 40년 지기가 되는 이 친구들에게 푸념조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그 많고 많은 동창들 가운데 꼭 한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려 봐도 그것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나보다는 영빈이가 져야 하고 대래가 져야 할 짐을 이 두 놈이 제 몫의 지게를 벗어 던지는 바람에 뒤늦게 내가 억울하게 그 짐을 맡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 망할 놈들아. 이왕 지게를 벗어 던졌으면 그 지게 위에 두 놈의 재능까지 함께 얹어서 주지. 짐은 무거워서 밀삐(지게 끈)가 터질 지경인데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내 재능은 언제나 목 마르고 부족하다. 짐 벗어 내게 맡긴 두 놈은 반성해라.' 그랬더니 당장 두 친구한테서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냐?' '지 좋아서 하는 일을 누구한테 핑계 대?' 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며칠 전 한 친구가 강릉에서 일산까지 글재주가 부족한 친구를 격려하러 왔다. 그런데 이 친구의 말이 또 염장을 지른다. "엄살부리지 말고, 열심히 써. 어릴 때부터 너는 보고 들은 게 다 소설거리 아니냐?"
보고 들은 게 다 소설거리다? 하긴 예전에도 밖에 나가서 우스갯소리로 그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순원의 소설은 거의 다 어머니가 써주고('수색 그 물빛 무늬') 아버지가 써주고('아들과 함께 걷는 길') 할아버지가 써주고('망배') 친척이 써주고('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말을 찾아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첫사랑', '강릉가는 옛길') 고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동네 고향 사람들이 써주고('순수') 정말 자기가 쓴 건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은비령' '19세' 등 몇 개밖에 없더라고 했다.
그래, 그렇게 써주는 사람이 많은데도 나는 늘 내 재능에 목이 마르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내가 작가가 아니라 그 두 놈 가운데 한 놈이 작가가 되었다 해도 그 놈의 이름으로 고향이 써주고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써주고 동네 사람들이 써주고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들이 써준 글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장 집안의 형제들을 보더라도 나보다는 막내 동생이 이쪽으로 더 재능이 많았던 거 같다. 재주 없는 형이 먼저 이쪽 방면으로 멍석을 깔고 앉자 동생이 형에게 이 길을 양보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온전히 내가 쓴 거라고 말하는 '19세' 속의 얘기처럼 고등학교 1학년 때 비행청소년처럼 학교를 때려치우고 대관령에 올라가 이태간 배추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이때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어른이 될 때까지 대관령에 주저앉아 계속 배추농사를 지었다면 내 길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태 만에 나는 학교로 돌아왔고, 대학도 문학 쪽이 아니라 경영대학을 갔으며, 금융기관에서 1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겉으로 드러난 이력만 본다면 이쪽 바닥과는 가장 거리 먼 쪽만 골라 다녔던 것 같은데 결국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어머니 말로 '아무리 돌고 돌아가도 늘 그 자리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셋째가 하는 일이 그렇다'고 했다. '젠쳉이(냄새 고약한 노린재)가 제 내(냄새)를 못 벗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벗을 수 없는 나의 '제 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세상에 대해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해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쪽보다는 누군가 그렇게 한 이야기를 미친 듯이 따라 읽는 쪽이 이 바닥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또 가장 어울리는 일이라는 데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작가로서는 특출하거나 성실할 자신이 없어도 독자로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 가깝게 성실할 것이라는 자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대관령에 올라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도, 주변에 군인들만 있지 사람 하나 제대로 구경할 수 없는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읽는 것 하나만은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게 토양이라면 토양이 되었을 것도 같다.
그런데도 재능이 따르지 못해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야 어떻게 하겠는가. 어느 작가인들 자기 일생과 바꿀 좋은 소설 한 편 왜 쓰고 싶지 않겠는가. 문학 쪽 일을 하며 지금도 내가 그의 다음 세계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읽는 일을 등한히 하며 좋은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습작생들과 언제부턴가 읽는 일엔 거의 손을 놓고 자기 쓰는 일에만 바쁜, 때로는 '내 것 쓰기도 바쁜데 남의 것 읽을 시간이 어디 있나?' 하는 말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아니 그 '바쁨'이라는 이름의 게으름을 자랑처럼 말하는 기성 작가들이다.
앞에서 내 소설을 '누가 써 주는가'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나는 400년 전에 조직된 대동계가 아직도 그 자손들에게로 이어지고, 이 땅에서는 유일하게 촌장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19일장으로 지낸 할머니의 장례와 1년 소상, 3년 대상의 유교적 가례를 지난 시절의 일이 아니라 우리 시절의 일로 보고 자랐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것도 내 나이 스무 살 때쯤이었다. 그래서 내 물리적 나이는 마흔 중반이지만 내가 통과해온 시대는 마치 200년도 더 되는 듯 싶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보다 할 이야기를 조금 더 가진 것은 사실이겠다.
내 성장기를 감쌌던 원형질적 삶과 이후 현대 산업사회 속의 삶이 알게 모르게 내 의식 속에서 무수히 충돌을 일으킨 것도 있겠다. 당장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 가면 '현대' 속에 내가 있고, 이십리 걸어 집으로 돌아 가면 '중세' 속에 내가 있고 했으니까. 작가가 자기 시대의 삶을 사람들의 마음밭을 갈아 기록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갈아야 할 마음밭도 제법 크고 넓다고 하겠다. 역사에 맞먹을 담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드리울 우물의 깊이라는 것도 그만하면 결코 얕지 않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그 마음밭을 갈며, 또 그 안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인가인데, 그리고 그것이 내가 왜 문학을 하는가이며, 또 어떻게 할 것인가일 텐데 거창하다고 반드시 큰 뜻이 담기는 것도 아니고, 그물 자리를 넓게 잡는다고 반드시 큰 고기가 걸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역사의 파수꾼도 아니고 사회의 파수꾼도 아니다. 초기엔 그런 쪽에까지 눈을 넓히려 했던 작품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장차 우리가 얼마나 더 문명화된 시대를 살더라도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고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우리 내면의 파수꾼이고 싶다.
그리고 다양성이 이 시대의 한 성격이고 문학의 지평을 확대하는 덕목이듯 내가 선험적으로 통과해온 시대의 넓이 만큼 내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져가고 싶다. 문학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양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라면 내일이라도 나는 다시 대관령으로 돌아가 이 봄 배추씨를 뿌릴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품종 재배로도 평생 동안 지치지 않을 일이 내겐 그것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 연보
1957년 강원 강릉 출생 1984년 강원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낮달' 당선 등단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장편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에덴에 그를 보낸다' '미혼에게 바친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그대 정동진에 가면' '순수' '모델' 등 동인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7) 한무숙문학상(200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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