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매니저 정영범(鄭永範·38)은 요즘 스타의 꿈을 가진 청소년과 부모들의 타깃이다. 원빈 양동근을 무명에서 톱스타로 키우고 최근 조현재 수애라는 신인을 발굴해 MBC-TV 월화 미니시리즈 러브레터의 남녀 주인공으로 변신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다스의 손'을 잡기 위한 탤런트 지망생들의 공세는 더욱 극성스러워 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알현' 하는 것은 스타가 되는 것만큼 힘든 일. "오디션을 하지 않고 평소 확신이 오는 사람을 찾아서 키운다" 는 원칙을 내세워 누구도 만나주지 않기 때문이다.그는 우연한 기회에 심은하의 매니저로 연예계에 발을 담근 후 이승연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하고, 지금은 양동근 김지수 이정진 윤손하 양정아 이나영 한채영 이혜은 수애 조현재등 유명 탤런트와 신인들을 10명의 직원과 함께 관리하고 있는 '스타 J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다.
그에게는 유난히 원칙이 많다. 그 중 남다른 하나는 연기자와의 계약시 계약금이 없는 것. 무명 신인에게도 100만원은 주고 톱스타라면 5년 계약에 3∼4억원을 주는 것이 관행인데 이를 무시한다. 6년간 한솥밥을 먹은 원빈이 지난 연말 재계약을 안하고 떠난 데도 이러한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연기자는 매니저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다. 연기자는 고객이고 매니저는 연기자의 의뢰를 받아 일을 대행하는 하수인이다. 계약금이라면 오히려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수입배분은 신인의 경우 회사와 5대5, 스타가 되면 연기자 몫이 7까지 오른다.
정대표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다큐멘타리 연출을 공부했다. 귀국후 91년 광고대행사에 취직을 했다가 6개월을 못 채웠다. 여기서 입사 동기인 015B의 장호일을 만난 게 연예인과의 첫 관계. 회사에서 나와서는 '말콤 X' 등 외화의 번역을 했다.
그러던 중 영화 수입차 미국에 갔다가 교민으로부터 꽤 독특한 노래를 하는 젊은이 3명을 소개받고는 신이 나서 장호일과 함께 음반제작을 했다. 솔리드 1집이었다. 그리고 기획사인 헤일로우에 들어가 솔리드 홍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흥행은 참패. 뿐만 아니라 이 회사 소속인 심은하의 과거 남자관계가 터지면서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회사에 심은하와 둘만 남는 사태가 겹쳤다.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 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신데렐라가 된 심은하에 배신감을 느낀 듯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정대표는 연기력 좋은 연예인이 그렇게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안타까워 매니저를 자청, 이리저리 뛰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마침내 스포츠지들이 다음날 심은하의 연예생명에 결정적인 기사를 게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침 신문을 집어 든 순간, 신문이 온통 김일성 사망기사로 도배된 것 아닌가. 김일성 덕분에 심은하의 스캔들은 숨을 죽였고 두달이 안 돼 CF까지 다시 찍는 쾌거(?)를 이뤘다. 얼떨결에 신참 매니저가 된 정대표는 내친김에 96년 독립해 '스타 J'를 차렸다. 처음 발굴한 신인은 지금 일본에서 탤런트로, MC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윤손하.
윤손하는 노래를 잘 한다는 사실에 착안, 기본 연기를 익힌후 뮤지컬 '겨울나그네'의 주역 공모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먼저 인정받도록 한 전략이 주효해 무난히 데뷔했다.
정대표는 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자기 연기자에게 꼭 맞는 작품과 배역을 찾아 출연을 성사시키는 것을 꼽는다.
수애는 4인조 그룹으로 가수를 준비중이던 것을 한눈에 멜로드라마용으로 점찍은 경우. 장수봉감독이 평소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라며 찾아 오라던 70년대 최고스타 정윤희형이었다.(TV에서보다 실물은 훨씬 더 닮았다) 90년대 중반이후 인공적인 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다시 자연미 선호로 돌아가는 중이기에 성공을 확신했다. 1년반 연기교육을 시키고 MBC 베스트극장 짝사랑의 주인공으로 추천했다. 연출자는 당연히 OK할 것이라는 무언의 교감이 있었다. 수애는 그리고 주말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 조연을 거쳐 3번째 드라마인 '러브레터'에서 히로인이 되었다.
조현재는 '조선남녀상열지사' 오디션때 갓쓰고 도포입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 '대망' 의 김종학감독을 졸라 3차례 오디션 끝에 세자를 만들었고 대망에서의 인기가 러브레터 주인공까지 연결되었다.
원빈은 미국 유학시절 중년여성들에게 남미의 미소년이 인기 있는 것을 보고 한국에도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던 중 패션쇼에서 발견한 흙속의 진주. 가을동화에서는 당초 원빈이 주인공이었으나 송승헌이 가세하면서 배역이 바뀌었다. 원빈은 서운해했지만 정대표는 쾌재를 불렀다. 송승헌의 인기로 시청자를 모으고 거기서 원빈을 부각시키겠다는 구상이 섰기 때문. 그래서 작가에 매달려 악역이었던 원빈 배역의 이미지를 미화시키고, 원빈의 주무대로 동화속 풍경의 리조트를 섭외하는데 앞장서는등 다방면의 전략을 펼쳤다.
그는 자신의 최대무기인 '배역을 선택하는 안목'에 대해서 "청소년기에 말썽을 많이 피워 방학때마다 며칠씩 서재에 갇히곤 했는데 그때 이책 저책 마구 꺼내 읽은 게 감성을 키우고 작품 이해력을 높인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면 옥석을 쉽게 가리고 역할에 맞는 연기자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인간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과장되어 녹아 있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교과서였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연기자는 절대 연기력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예계의 성상납과 같은 비리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스타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안했어도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겠다"고 답한다.
10년이 채 안됐지만 그 동안 매니저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처음 매니저 할 때는 '애인이냐? 헤어지면 그만인데 어떻게 믿냐'며 방송국에서 아예 상대를 안해주었죠. 지금같이 매니저와 출연계약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이제는 출입증까지 나오니 얼마나 위상이 높아진 것입니까."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프로필
1965년 서울생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수료
나라기획 근무
아이엠 커뮤니케이션 차장
헤일로우 차장
스타 J 엔터테인먼트 설립
심은하 장동건 이승연 원빈 (이상 전) 김지수 양동근 윤손하 이정진 수애 조현재(이상 현) 매니저
■ 양동근 스타 되기까지
아역시절 성공한 연기자였던 양동근(사진)은 사람들에게 서울뚝배기로 기억된다.
양동근을 만난 것은 99년 원빈과 KBS의 캠퍼스드라마 '광끼'를 같이 할 때였다. 드라마와 영화의 단역을 전전하던 양동근은 원빈과 배두나 주변의 감초 같은 역할이었다.
그러나 신인 주인공들이 어설픈 연기를 하는 가운데 빛나는 존재가 양동근이었다. 주어진 대사와 위치를 벗어나지 않아도 그는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카메라를 빨아 들이는 힘이 있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그를 지켜보며 큰 물건임을 직감했다.
그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매니지먼트를 잘 모르니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휙하니 나가버린 그를 바로 '해변으로 가다'라는 영화에 섭외하여 6개월간 촬영시켰다. 그러나 연기자가 모두 신인이었고 양동근 같은 인물이 이런 구조에서 조연으로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기회는 몇 달 뒤에 왔다. MBC 시트콤 '논스톱'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원빈을 한달만 출연시키자는 제의가 있었으나 당시 '가을동화'로 떠 있던 원빈에게는 무리한 일이었던 것. 돌아서는 PD에게 "뜬금없는 제안이지만 양동근이라는 뛰어난 연기자가 있다"고 추천하였다. "스타 J니까 믿어보자"며 만들어 준 오디션에서 양동근은 단번에 PD의 눈에 들었고 마침내 '뉴논스톱'에 없으면 안되는 존재라는 칭찬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도 장점도 많지만 약점도 적지 않은 양동근이 일일 시트콤을 통한 지속적인 노출로 거부감을 줄이고 호감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논스톱의 인기로 각종 CF와 이벤트를 하면서 양동근에게 래퍼의 재능이 있음을 간파, 1집앨범을 출시하고 이후 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에 출연하면서 영화홍보를 겸해 2집앨범 '양동근 디스코왕이 되다'를 만들었다.
이 와중에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역이 들어왔다. 앨범홍보를 1개월밖에 못해 드라마에 출연하면 앨범이 실패하는 상황. 하지만 행복한 고민을 접고 출연을 결정한 끝에 드라마의 히트와 함께 양동근은 '젊은 연기파배우'로 각인되는 큰 소득을 얻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막바지 촬영중 영화 '약속'의 김유진감독이 만드는 '와일드 카드'를 같이 찍었고 5월 16일 이 영화가 개봉된다. 그러면 양동근은 TV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특급배우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정영범·스타 J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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