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남독녀인 딸이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늦게 전학을 가는 바람에 중학교 배정이 늦어져 교복도 급하게 구해야 했고 입학 전날 부랴부랴 가방이며 신발을 사느라 분주 했다.입학 이후 나도 덩달아 중학생이 되어 딸과 함께 바빠졌다. 직장생활을 해 내 시간은 퇴근 후 몇 시간과 주말뿐이다. 근래엔 그 시간마저 거의 나를 위해 써본 기억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극성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이 초등 6학년 때 난 직장 일에 신경 쓰느라 세심하게 딸을 돌보지 못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충 알긴 했지만 보통 아이들이 겪는 학교생활의 일부분이겠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딸은 학교 가기 싫다, 전학 가고 싶다고 했다. 평상시 무척 활발한 아이라 이따금 어두운 얼굴을 볼 때도 그저 사춘기라고 간단히 생각했었다.
어느 날 딸이 휴대폰으로 직장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게 해달라며 흐느꼈다. 그제서야 심각함을 깨달은 나는 집으로 달려왔고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 전후 사정을 말한 뒤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으로 여러 번 궁지에 몰린 딸은 언젠가 아이들로부터 폭력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신적으로 시달린 딸은 같은 반 친구들을 두려워했고 자신의 행동이 주변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늘 초조해 했다.
그런 딸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쪼개어 얘기를 들어주고 딸의 눈높이에 맞춰 반응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직장생활에 모범엄마 역할까지 하기가 말처럼 쉽진 않았다. 다행히 딸의 표정은 많이 밝아졌다.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려고 머리를 만지는데 이마 위로 머리가 휑했다. 들춰보니 엄지손톱 만한 크기의 원형탈모였다. 직장일과 딸 문제로 정신없이 보내왔던 몇 개월의 시간이 남긴 흔적이었다.
하지만 어디 나뿐이랴. 자식을 키우는 이 땅의 어머니들 가슴 속엔 이보다 더한 구멍이 수도 없이 뚫려 있을 것이다.
/유 하(가명)·zisun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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