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들어서며 시작된 일본의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가닥을 잡으며 골간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 내각의 사법제도개혁본부 사법제도개혁본부(본부장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최고재판소와 일본변호사연합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근 개혁안을 마무리 짓고 올해와 내년초 관련 법안들을 국회에 상정키로 했다. 사법제도개혁본부는 10년간의 사회적 논의 끝에 2001년 사법제도개혁추진법이 공포된 뒤 내각에 설치된 기관이다."국민의 시점에서 이용하기 쉽고 알기 쉬운 사법제도를 지향한다"는 기본목표를 세운 일본의 사법제도 개혁은 법과대학원 설립, 재판원 제도 도입, 재판신속화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법과대학원 설립
일본 법조계에는 "2할 사법"이란 말이 있다. 분쟁해결의 수단으로 사법제도가 이용되는 비율이 2할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비싼 비용과 까다로운 절차 등 법률서비스로서의 사법제도가 문턱이 너무 높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 일본의 법조인 1인당 국민수는 6,300명이다. 미국 290명, 독일 740명, 영국 710명, 프랑스 1640명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법조인수를 늘리면서도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온 방안이 미국식 로스쿨인 법과대학원의 설립이다. 2∼3년간 실무 중심의 법과대학원 과정을 마친 졸업생 중 70∼80%가 새로운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법조인 양성·선발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1,000여명선인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2010년께는 3,000여명으로 늘어나고, 현재 2만여명인 법조인수가 2018년에는 5만여명 규모가 된다. 내년 4월부터 개교가 허용되는 법과대학원에 현직 판사나 검사를 교원으로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재판원제도 도입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재판원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
사형, 무기징역,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 해당하는 중요 형사재판에 해당 재판소 관할 지역 유권자 가운데 무작위로 뽑은 사람을 재판원으로 참가시키는 제도다. 재판원은 증인 심문과 피고인 진술을 요구하는 질문권이 있고, 판사와 함께 심리하고 유·무죄 판단과 형량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미국·영국의 배심(陪審)제는 배심원이 사실인정과 유·무죄를 판단하고 판사가 형량을 정하는 데 비해, 재판원은 재판과정 전체에 판사와 함께 관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보통 사람들이 한번의 재판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법률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여러 재판에 판사와 함께 참여하는 독일·프랑스의 참심(參審)제와도 다른 일본의 독특한 모델이다. 재판부 구성방식은 현재 '판사 3명+재판원 2∼3명'안과 '판사 1명+재판원 9∼11명'안 등 복수안을 놓고 모의재판을 통해 장단점을 검토하고 있다.
재판원제도는 판사가 비전문가인 재판원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쟁점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법원과 국민의 거리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검찰도 피고인의 진술과정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등 재판원이 쉽게 납득할 투명성과 입증방법의 개선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형사재판에 도입한 뒤 성과를 평가해 민사재판으로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신속한 재판
1995년 3월 도쿄(東京)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해 12명의 사망자와 5,0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낸 옴진리교 교주 마츠모토 지즈오(松本智津夫)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의 첫 피고인 신문이 지난주에야 시작됐다. 사건 발생 8년만이다. 1989년 정·관계에 비상장주식을 뿌려 일본을 발칵 뒤집었던 '리쿠르트 스캔들'의 주범격인 이 회사 사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첫 공판 후 13년만인 이달초에 나왔다. 이 두 재판은 일본에서 중요 사건의 재판이 얼마나 더디게 진행되는가를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최고재판소는 추억 속의 사건을 재판한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사법제도개혁본부는 1심 판결을 2년 이내에 내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재판신속화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재판의 충실·신속화를 달성하기 위한 법제·재정상의 조치 등을 국가와 재판소, 변호사회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최고재판소가 재판 신속화에 관한 검증을 실시해 2년마다 국민에게 공표토록 했다. '2년 이내 1심 판결'이 법관을 구속하는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사법개혁 전체의 방향을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편의 증진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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