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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신용평가기관

입력
200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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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영국의 피치. '세계적' '국제적'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이들 신용평가기관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외환위기 때 였다. 이들은 당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여지없이 떨어뜨렸다. 이는 우리의 자존심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 그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신용이 없으면 돈을 빌리기가 힘들고, 빌리더라도 이자를 더 줘야 하는데, 나라 전체가 하루아침에 신용 불량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매기는 국가 신용등급은 정부나 국책은행 등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릴 때 금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반 은행이나 기업들도 영향을 받는다. 국가 신용등급은 그 나라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의 최고 한도다. 국가 신용등급 이상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조정하면 차입 금리가 0.35%포인트 정도 변한다. 우리의 경우 등급이 한 단계 떨어지면 연간 5억달러 가량을 더 부담해야 된다. 그러니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막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얼마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그 근원지라고 지적했다. SEC가 이들 3대 기관에만 '공인 국가 신용평가기관' 자격을 줬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의 시장 지배를 조장해 왔다는 것이다. SEC는 자격 기준을 1997년에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그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진입 장벽을 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은 캐나다의 민간 신용평가회사인 도미니온 본드 레이팅 서비스사가 SEC로부터 4번째 신용평가기관으로 공인 받았다고 보도했다. 기존 3개사의 독점 폐해가 시정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상전'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 지난달 11일 무디스가 우리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 낮추었을 때 국내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 쳤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북한 핵 문제에 SK사태가 겹쳐 경제가 휘청거릴 때 '다행히' 무디스는 우리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대표단을 미국에 급파, 우리의 상황을 설명한 결과다. 대표단은 '한 건 했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분위기지만, 씁쓸하다. 자신의 신용이 좋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남의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 또 다시 성급히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은 없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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