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에서 돌아와 시간강사 시절 강의를 나가던 한 대학에서 분규가 일어난 적이 있다. 5공 정부에 참여했던 교수의 복직에 대해 학생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인데, 이에 대해 그 대학 교수였던 대학 동기는 교권에 대한 침해라며 분노했다. 그래서 나는 "교권이 그처럼 신성한 것이라면 왜 군사독재가 교권을 침해할 때 분노하며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더니 그 친구는 "그런 생각은 못해 봤는데 네 말이 맞다"며 부끄러워했다.김대중 정부 후반에 있었던 언론사 사주 구속사태만 해도 그렇다. 당시 그것이 언론탄압이냐는 논쟁이 일어났다. 언론개혁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이고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언론사 세무사찰의 의도는 언론개혁이었겠지만 당시의 정황이나 추진 방식 등은 언론탄압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군사독재의 언론탄압에 저항해 투쟁했던 민주투사들이 아니라 침묵으로 일관했던 이문열과 같은 사람들이 갑자기 민주투사로 변신해 언론탄압을 외치고 나섰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간의 공개토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검찰의 문제가 검찰의 인사권이 독립되지 않아서 생긴 것들이므로 인사권의 독립이라는 제도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검찰은 이날 토론에서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정치권이 검찰수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예증으로 SK그룹 수사와 관련해 여권과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 등을 폭로해 노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러나 토론 결과는 검사들의 완패였다. 그리고 여론이 검찰에 등을 돌린 것은 노 대통령과 검사들간의 토론기술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검찰이 그동안 '정권의 주구'로 행동하면서 검찰권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즉 공정한 법 집행자로서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검찰이 갑자기 공정한 검찰이 되겠다며 인사권을 달라고 나서니 국민들의 눈에 한마디로 웃기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검찰이 진정으로 검찰권의 독립을 이루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노무현 정부로부터 들어올 수 있는 정치적 개입에 대해 투쟁하며 검찰권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실 이번 검찰파동에서 주목을 받은 또 다른 모습은 검찰의 저항 속에서 고군분투한 강금실 법무장관의 당찬 모습이었다. 그리나 강 장관의 고군분투는 단순히 강 장관 개인의 경우를 넘어서 관료집단의 바다 속에 혈혈 단신으로 던져진 개혁장관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또 다른 대표적인 개혁장관이 임명된 교육인적자원부의 경우, 인권침해 시비가 일고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 등과 관련해 윤덕홍 부총리와 면담을 하기로 했던 전교조측이 교육부 관료들이 윤 부총리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고 귀를 막고 있다며 이의 개선을 요구하며 면담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검찰 사태처럼 계속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개토론을 통해 관료들의 저항을 누르고 모든 장관의 개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개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장관들이 서너명의 특별보좌관을 데리고 들어가 이들이 팀이 되어 개혁을 추진하도록 하겠다던 인수위의 계획이 예산 등을 이유로 한 관료들의 저항에 의해 축소되고 유명무실화하고 있는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이번 검찰사태처럼 매번 '개혁장관 구하기'에 직접 나설 수 없는 만큼, 제대로 된 특별보좌관제를 반드시 관철시켜 개혁장관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손 호 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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