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1945년 창설 이래 최대 시련을 맞고 있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전쟁을 강행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당초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기치로 내건 유엔이지만 이번에 분쟁 조정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해 일각에서는 '유엔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책임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일어나서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유엔 안보리를 정면 비난함으로써 유엔과 미국의 갈등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무력 사용 승인 권한을 지닌 유일한 국제기구인 유엔을 거치지 않고 전쟁에 돌입할 예정이어서 유엔 주도 하의 집단안보체제가 흔들리게 됐다. 물론 미국이 유엔 안보리 승인 없이 다른 나라를 침공한 것이 전적으로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유엔의 테이블에 끌어들였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일방적으로 유엔의 논의 틀을 내팽겨쳤다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미국은 유엔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전쟁 수행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다른 국가들의 도움을 얻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이라크전쟁이 마무리된 뒤에도 유엔과 미국의 앙금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미국 행정부에서는 '유엔 개혁론'이나 '다른 국제기구 창설론 '등이 제기될 수도 있다. 또 유엔 전체 예산의 20% 이상을 지원해온 미국은 유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다. 유엔 내부에서는 '미국 비판론'과 '유엔 개혁론'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이 이번에 완전히 갈라설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이 모든 국제 현안을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라크 전후 복구와 북한 핵 문제 대응에서 유엔과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유엔도 전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방위비를 모두 합한 만큼의 국방 예산을 지출하는 미국을 뺀 상태에서 집단 안보를 논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엔이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유엔 안보리 의사결정 방식 개편 등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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