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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모하메드와 압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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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모하메드와 압둘라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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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신새벽을 가르는 날카로운 비행음과 함께 포탄의 화염이 이라크 사막을 훤히 비출 날도 며칠 안 남은 것 같다. 그리 되면 하염없이 스러져갈 모하메드와 압둘라들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전쟁통에는 모하메드와 압둘라의 아들 딸들의 죽음조차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표현 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이들의 예고된 죽음이 특히 난감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전쟁이 난센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단어나 기호를 난센스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바로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전쟁으로 치닫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난센스의 극치를 본다.

1월 31일 그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유엔 결의 1441호는 2차 유엔 결의 없이도 (이라크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에게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렇게 강변한다. 난센스다.

작년 11월 8일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1441호는 이라크에 대해 완전한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결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위반으로 간주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고집을 꺾어 2차 결의안이 통과되면 전쟁을 해도 되겠지? 역시 아니올시다이다. 미국 영국 스페인이 함께 제출해 놓은 2차 결의안의 요지는 "이라크는 유엔이 부여한 무장해제의 마지막 기회를 잡지 못했다"이다. 원안대로, 만장일치로 통과된다고 해서 전쟁을 해도 된다고 결론짓는 것은 난센스다. 왜? 전쟁을 해도 된다는 말이 없지 않은가?

당장 침략을 당했을 경우를 제외하고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모든 전쟁은 불법이다. 평화를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허용하는 안보리 결의는 유엔 헌장 2, 41, 42조에 따라 육·해·공군의 투입, 봉쇄 작전 등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내용을 담게 돼 있다. '심각한 결과'니 '기회를 잡지 못했다'느니 하며 얼버무리지 않는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하기 위해 파병을 명한 1990년 11월의 안보리 결의 678호를 다시 보라.

부시 대통령은 작년 유엔 총회 연설 이틀 후인 9월 14일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몇 번이나 위반했는지 아십니까? 16번입니다. 16번…." 그러면서 손가락까지 펴보였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를 몇 번이나 위반했는지 아십니까? 31번입니다. 31번. 터키는 유엔 결의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아십니까? 23번입니다. 23번. 그렇다고 누가 이스라엘이나 터키를 치자고 주장하는가?

부시 대통령의 난센스 행진을 시비하는 이유는 언어와 의미에 대한 가당찮은 파괴를 강요하는 오만이 못마땅해서다. 언어와 의미가 파괴되는 순간 야만은 쉽게 다가선다. 동시에, 바그다드와 같은 시대를 사는 한 인간으로서 동시대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의 발언 가운데 난센스가 아닌 명언을 하나 들려주고 싶다. "우리가 오만한 나라라면 남들은 우리를 증오할 것이다. 우리가 겸허하면서도 강한 나라라면 남들은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의 대선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광 일 국제부 차장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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