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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서산 시민축구단 최 종 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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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서산 시민축구단 최 종 덕 감독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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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서 '제2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들겠다고 하면 남들이 웃을까요." 1970, 80년대 중거리 슛 도사로 통했던 최종덕(49) 감독. 지천명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 그가 요즘 황당해보이기 까지 하는 이꿈을 실현하기 위해 충남 서산 갯벌의 동네축구단 선수들과 함께 지옥훈련을 견뎌내고 있다. 그 구단은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서산시민구단. 최 감독의 정성과 노력 탓일까. 지난해 전국체전 준우승에 이어 최근 열린 대통령배 16강에 오르는 등 꿈을 이뤄가고 있다.축구가 너무 좋았던 소년

최 감독의 축구와의 질긴 인연은 중학교 1년 때인 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부도 잘 하면서 왜 공을 차려 하느냐'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자 몰래 짐을 싸서 집을 나와 서울로 떠나게 된다.

오직 축구를 위해 객지에서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벌인 '축구가출 소년'은 5년이 지난 고교 2년 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청소년대표로 '금의환향'했다. 편지 한 통 없다 갑자기 나타난 소년과 마주친 부모는 "한번 시작한 일이니 끝을 보라"며 처음으로 어깨를 쓰다듬었다. 소년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축구와 인연을 쌓은 소년은 국가대표와 프로 생활을 거친 끝에 갯벌로 돌아와 '꿈나무' 부터 보듬기 시작했다.

축구교실에서 시민구단으로

최 감독은 동국대 사령탑 시절인 93년 축구지도자학을 강의하는 한편 모교인 서산 해미초등학교에서 주말 축구교실을 여는 등 열정이 넘쳐 났다. 그는 "가난한 시골 아이들을 위해 유니폼도 공짜로 주었다"며 "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학생이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97년에는 축구대학을 설립해보자는 한 독지가의 제의에 흔쾌히 동의, 동국대 감독직을 사퇴하고 아예 고향으로 내려 왔다.

자금 사정으로 축구대학 설립은 2008년으로 미뤘지만 그를 눈여겨 보아온 서산 유지들은 일단 향토 실업팀 창단을 제의했다. 최 감독은 프로와 아마 각 구단에 협조를 요청, 마침내 지난해 4월 20명의 선수를 짜깁기해 구단을 출범시켰다. 그는 훈련 때마다 "하기 싫은 사람은 꾀부리지 말고 나가서 쉬라"고 말한다. 누가 감히 나가서 쉬겠는가. 숙소는 빈 건설회사 기숙사를 빌려 쓰고 잔디구장을 찾아 이곳 저곳 떠도는 신세였지만 그의 알토란 같은 지도 속에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지난해 11월 제주전국체전서 준우승, 주위를 놀라게 한 구단은 최근 대통령배서 빡빡한 일정과 부상 선수가 속출, 코치가 뛰는 곡절 끝에 8강 문턱서 탈락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정신력과 체력에서 프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트레이너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자부심 만큼은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CU@K리그

최 감독에게는 축구계에서 아직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교 때 슈팅력을 키우기 위해 물에 불린 공으로 골대 양쪽에 매달아 놓은 깡통을 맞추며 정확도와 힘을 키웠던 것. 최 감독은 덕분에 78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이스라엘전에서 무려 40m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중거리 슛의 일인자가 된다. 그는 이를 예로 들며 "해내겠다는 의욕만 있다면 얼마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서산구단은 3년 내 프로리그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자본으로 출발해 명문 구단으로 우뚝 선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하나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K2(프로2부)리그를 염두에 둔 축구협회도 실업대회를 올해부터 리그제로 전환, 서산의 프로화는 탄력을 받고 있다. 최 감독은 "압박과 체력, 스피드 위주의 프로식 훈련을 쌓고 있다"며 '준프로'임을 내비쳤다. 한일월드컵을 지켜 보며 "히딩크 같은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절실히 느꼈다"는 그는 서둘러 호각을 집어 들고 땀으로 얼룩진 선수들을 향해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서산=이범구기자 goguma@hk.co.kr

사진=최종욱기자

● 프로필

출신지 1954년 충남 서산

가족 김민정(43)씨와 2남

학력 서산 해미초-서울 중앙중-중앙고-고려대

선수경력 포항제철(아마), 홍콩 해봉, 할렐루야, 럭키골드스타(현 안양LG)

지도자경력 유공(현 부천SK)코치, 동국대 감독, 서산시민구단 감독

■ 서산 시민축구단은

10일 대통령배축구대회 16강전이 열린 경기 용인 명지대구장.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온 서산시민구단 서포터스들이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열렬한 응원전을 펼쳤다. 4강전쯤은 돼야 학생이나 소속 회사 직원들이 응원 오는 것이 통례지만 일반 직장인, 학생,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서산시민구단 서포터스들은 이처럼 매 경기 구단을 좇아다닌다. 그만큼 서산시민구단은 팬들과 밀착돼 있고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30명의 프로2군 출신, 연습생들로 구성된 서산시민구단의 한해 예산은 8억여원. 도, 시, 구단, 시민들이 3대3대3대1의 비율로 부담한다. 시민들도 일정지분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웃 일본은 이미 이 같은 방식으로 프로구단이 운영돼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들도 다수 프로구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서산시민이 소도시 구단의 첫 모델인 셈이다.

서산시민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자생력을 갖춘 최초의 프로구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의 프로팀들은 모두 한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흑자경영이 목표가 아니라 소속그룹의 홍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산시민구단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때문에 서산시민구단 운영진은 현재 모금운동 외에 다각도로 수익모델을 찾고 있다. 50억원 정도가 모이면 2006년 프로화, 2008년 축구대학 설립 목표가 꿈만은 아니다. 1인1구좌를 갖고 있는 800여명의 서포터스들을 3,000∼4,000명으로 늘리는 것도 목표다.

유용철(44·정우건설 대표) 구단주는 "K2 리그 출범을 앞두고 올해부터 실업대회가 리그제로 바뀌어 우리구단이 서산과 좀더 친숙하게 다가서게 됐다"면서 "최초의 시민프로구단과 함께 대학, 타운 등 3박자를 갖춰 서산을 축구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범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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