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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노통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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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노통장이라면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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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생김새가 닮았다는 이유로 대머리 탤런트가 TV에서 퇴출 당해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 흉내는 ‘개인기’의단골 메뉴가 됐다. 성대모사만으로는 성이 안 차서 겉 모습까지 빼 닮으려안간힘을 쓴다.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목에 잔뜩 힘을 준 채 “본인은…” 하고 말문을 여는 전두환 전 대통령흉내가 한때 유행했지만 퇴임 후의 일이다. 현직 대통령 흉내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저는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학실히(확실히)” “강간(관광) 도시” 등 유행어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절정을 이뤘다.

과거 방송에서 듣기 어려웠던 전라도 사투리의 묘미를 살린 성대모사는때마침 불어 닥친 ‘개인기’ 바람을 타고 TV를 점령했다. 하지만 압권은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흉내를 내는 KBS 2TV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의‘노통장’이다.

1월19일 첫 전파를 탄 노통장은 노 대통령 어법의 핵심을 예리하게 뽑아낸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해 배꼽을 잡도록 했다. 무명 개그맨 김상태(30)는 그것만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노 통장 신드롬의 비결은 말투 흉내를 넘어 현직 대통령을 코미디의 고정 캐릭터로 등장시킨 데 있다. 8대2 가르마와 이마의 굵은 일자 주름 등닮은 꼴 치장도 절묘했다. 노 대통령의 험난한 정치 역정을 연상시키는 4년간의 서러운 무명 시절을 뚝심과 성실로 버텨 ‘인생 역전’을 일군 김상태의 개인사도 신드롬 형성에 한 몫을 했다.

‘개그콘서트’과는 웃음 코드가 영 맞지 않던 기자도 그를 만난 뒤 순수함과 열정에 반해 일요일 밤을 기다리게 됐다.

그러나 기대는 어느새 실망과 씁쓸함으로 바뀌고 있다. 보여주는 것이라곤 동음이의어를 동원해 동료를 툭툭 치며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하는 게 고작이다.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코미디 판을 점령한 즉흥적 말장난에 밀려난 풍자의 부활을 바랐던 것은 지나친 기대였을까.

솔직히 말해 김상태는 ‘개인기’가 달린다. 그도 인정한다. 흉내로 치자면 MBC ‘코미디하우스’ 삼자토론에 나오는 ‘인간복사기’ 배칠수가 한수 위다. 그렇다면 김상태가 기댈 것은 어설픈 흉내내기보다 연속 코미디극의 장점을 살려 뼈 있는 웃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코미디는 본래 수준 높은 해학극을 일컫는다. 우리네 코미디의 뿌리도 양반사회의 모순 등을 통렬히 풍자한 마당극이 아닌가. 내가 만약 노통장이라면 이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민들의 애환을 담겠다”던 애초의다짐을 되새겨 보겠다. ‘벼락 인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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