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바람둥이 노릇이 어렵구료."전도연(숙부인)과 이미숙(조씨부인)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헌칠한 키에 날렵한 몸매의 배용준(조원)이 흰 모시 도포를 휘날리며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조선시대 대표 바람둥이'에 어울리는 화려하고도 늠름한 모습이었다. '첫사랑' '겨울 연가' 등으로 안방 극장을 휘어 잡은 최고의 멜로 탤런트로 군림했던 덕분인지 갓 데뷔한 영화배우의 풋풋함보다는 관록이 느껴졌다.
봄볕이 따사롭게 내려 앉은 양수리 종합촬영소 1 스튜디오. 4억원을 들여 지었다는 9칸 짜리 18세기 사대부 집안의 안채인 부용정(芙蓉亭)에도 봄 기운이 화사했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세트장은 '정사'를 만든 이재용 감독답게 담장에 붙은 담쟁이 넝쿨 같은 소품 하나에도 꼼꼼함이 엿보였다.
조원이 행차한 것은 과거의 애인인 '조선시대 대표 요부' 조씨부인과 '조선시대 대표 정절녀' 숙부인의 정절을 두고 내기를 걸었기 때문이다. 고고한 숙부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느닷없이 나타난 것. '스캔들'은 18세기 프랑스 작가 피에르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에 맞게 각색, 조선시대 대표 바람둥이와 요부가 정절녀를 무너뜨린다는 코믹 에로물로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다.
배용준(31)은 조원을 "문무를 겸비하고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하지만 벼슬을 마다하고 자유분방하게 조선시대의 윤리를 넘나든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에서의 냉소적이고 야비한 성격을 넉살 좋은 유머로 포장한 인물이죠."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해서 TV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힘이 들었다는 그는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라는 말로 영화 데뷔작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신인'답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영화의 미덕은 모두 이미숙 전도연과 이재용 감독 덕이라고 돌렸다. 극중에서 어릴 적 연인으로 나오는 이미숙이 살짝 거들었다. "힘들어서 매일 죽고 싶대요. 순직할지도 몰라요."
'넘어뜨려야 할' 정절녀 전도연과는 1995년 TV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이미숙은 '정절녀' 전도연을 가리키며 '실제 생활하고는 달라 보이지만'이라고 토를 달아 웃음을 자아냈다.
몸무게 7㎏을 뺐다는 배용준은 움직임이 더욱 가벼워 보였다. "옷을 벗을 때 보기도 좋고, 수염을 붙일 때도 자연스럽다"는 게 감량의 이유이다. 안경을 벗은 얼굴 선은 더욱 또렷해 보인다. 바람둥이 역을 맡게 된 계기를 묻자 "바람둥이가 아니라서 어렵다"는 뻣뻣한 말로 슬쩍 도망갔다. "진정한 바람둥이가 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되고 시간을 잘 쪼개 써야 한다"는 말로 보아 전력이 미심쩍기도 했다. 노출 장면에 대해서는 "요신(베드신을 이렇게 불렀다)이 있어서 부담스럽지만 어쩌겠느냐"며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충무로 영입 0순위로 꼽혔던 그답게 숱한 시나리오가 그를 기다렸고 그는 '스캔들'을 통해 바람둥이로의 변신을 노렸다. "100편쯤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는 건 과장"이라고 시침을 떼다가는 "80편 정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상투를 쓰고 분장을 하느라 1시간 반이 걸리고 이마엔 피멍이 들 지경이지만 "내 안의 다른 나를 보는 게 즐겁다"고 변신의 즐거움을 밝혔다.
조원은 9년이나 수절해 열녀문까지 선 숙부인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시대를 앞선 프리섹스 주의자 조원의 정절녀 함락 작전이 시작됐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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