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지척으로 다가오자 바그다드 상황이 긴박해지고 있다. 미국 영국 스페인의 정상들이 대서양 아조레스 제도에 모여 이라크전 개전을 최종 논의한다는 뉴스가 나온 16일 오후(현지시간)부터 평온을 유지해오던 바그다드 시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시민들은 17일 주유소에서 비상 연료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기자를 안내하는 카심 살만(45)씨는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빨리 이라크를 빠져나가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전쟁을 20년 가까이 옆에 끼고 살았던 그들인 만큼 극심한 혼란이나 공황상태로는 빠지지 않는 모습이다.
긴박한 상황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는 이라크 출국의 어려움이다. 기자는 입국할 당시 100달러를 주고 이라크에 들어오는 지프 밴 1대를 빌릴 수 있었으나 상황이 급변하자 요르단 국경으로 빠져나가는 차를 대여하는 비용이 400달러 이상으로 뛰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라크 가이드나 비밀 경찰들도 "솔직히 걱정된다. 내 한 몸은 걱정되지 않지만 전쟁 개시 후 가족들이 어떻게 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알 사둔 거리의 군인 징병소에는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 입대를 신청하려는 30∼40여명의 청년들이 징병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라크 특수부대원들이 민간인 복장을 한 채 바그다드 외곽 민가에서 배치돼 시가전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미 CNN 방송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 언론들은 바그다드를 떠났거나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이라크 정부가 전쟁보도를 위해 CNN 방송에만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서방의 일부 언론사들은 방송 장비 등을 남겨두고 바그다드를 떠났다. 현지에서 고용한 이라크인 통신원들이 전쟁상황을 중계할 수 있도록 장비를 남겨 둔 것이다.
CNN 취재팀의 숙소인 팔레스타인 호텔의 변화도 화제다. 시민들은 바그다드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인 이곳의 모든 창문이 검은 천과 테이프로 완전히 밀봉이 됐다고 전했다. 밀봉하면 폭격의 충격이 훨씬 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의 광기를 질타하는 바그다드의 반전 운동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듯하다. 16일 오후 4시 바그다드 알 타흐리드(해방) 광장에서는 전세계의 인간방패 자원자 70여명, 이라크 평화운동팀(IPT) 30여명, 이라크 반전운동가 등 500여명이 모여 반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국의 반전 운동가 최병수(崔秉洙·44)씨는 행사도중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이라크를 향해 미국과 영국이 포탄과 미사일을 퍼붓는 모습을 형상화한 가로 8.4m, 세로 6m의 대형 걸개그림 '야만의 둥지'를 전시, 큰 반향을 얻었다. 그는 "이라크의 어린이들이 평생 치유하지 못할 배고픔과 전쟁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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