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때의 대사헌 채수(菜壽)가 어느 날 손자를 안고 "손자야야독서불(孫子夜夜獨書不·손자녀석이 밤마다 글을 읽지 않는구나)"이라고 읊었다. 그러자 대여섯 살 된 손자가 우는 채로 "조부조조약주맹(祖父朝朝藥酒猛·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약주깨나 드시네)"이라고 되받았다. 또 손자를 업고 눈 내린 뜰을 거닐다가 "견주매화락(犬走梅花落·개가 뛰니 매화꽃 떨어진 자국이로군)"이라고 하자 손자는 즉각 "계행죽엽성(鷄行竹葉成·닭이 걸어가니 대잎 모양일세)"이라고 화답했다. 시를 매개로 한 조손간의 이 대화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눈에 찍힌 개와 닭의 발자국은 매화꽃 대잎과 흡사하다. 동물을 통해 식물을 인식하는 셈인데, 동물 발자국의 식별은 옛 인류에게는 환경 적응과 생존의 주요 조건이었다. 어느 문화에서건 동물발자국을 식별하는 능력이 문자를 만들어낸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한 신경심리학자는 읽는 능력이 듣는 능력과 달리 태어날 때 타고 나는 것이 아니며 5,000년 전 문자의 고안과 함께 비로소 사용하게 된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뇌가 손상돼 간단한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도 그 동물을 알아차릴 수 없는 환자들은 모두 읽기능력에 문제를 보였다는 것이다.
■ 세계적으로 동물발자국의 화석은 많다. 그런데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32만∼38만년 전의 인류가 남긴 최고(最古)의 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 인간의 발자국도 이렇게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족용중(足容重)이라는 경구가 생겼을 것이다. 백범이 즐겨 휘호했다는 시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가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취는 후인들의 길잡이가 된다)'도 같은 뜻이다. 서산대사의 시라거니 조선후기의 문신 이양연의 시라거니 설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 고위직 검찰인사에서 유임된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이 소동파의 시를 인용해 "인생은 눈이나 진흙 위에 남겨진 기러기의 발자국과 같다"며 공인의 삶과 벼슬에 대한 허무감을 토로한 바 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이서옹 스님도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스님들을 일갈할 때 인용했던 말이다. 인간의 발자국은 없어지고 지워지기 쉽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남겨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발자국만큼 중요한 것은 말이다. 발자국 발자취라는 말은 있는데 말자국 말자취라는 말은 왜 없을까. 말을 자주 바꾸는 공직자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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