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아가씨, 생일 축하해요." 지난 11일 서울 신당동의 실버타운 '시니어스타워' 휴게실에서 열린 합동 생일파티. 이달 생일을 맞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자리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 70대 할아버지가 동년배 할머니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장미꽃을 건네주자, 주름진 얼굴에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으로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는 내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냈는데…"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40여명이 모인 이날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자랑이 시작됐고, 저마다 노래교실에서 익힌 솜씨를 자랑하느라, 마이크에 불이 난다. 한 켠에서는 한 할머니가 옆 자리의 할아버지에게 귤을 까 건네주며 시중을 드느라 여념이 없다. 입주자들의 건강과 생활을 관리하고 있는 김성자 간호과장은 "이 곳에는 연애사건, 삼각관계도 많다"고 살짝 일러준다.5년전 문을 연 '시니어스타워'는 국내 실버타운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신당동 본점, 분당 지점과 함께 최근 강서구 발산동에 지점을 연 '시니어스타워'의 정확한 명칭은 '유료 노인복지주택'. 대부분의 유료 노인복지주택은 의식주가 겨우 해결되는 양로원 수준인 데 반해, '시니어스타워'는 의료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노년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중산층 실버를 겨냥한 시설인 만큼 15평형에 1억2,000만원, 30평형에 2억3,000만원 등 입주비용은 만만치가 않으나 생활비로 1인당 월 33만원을 내면 의식주가 모두 해결된다. 특히 당뇨병·고혈압 등 질환에 따라 개인별 식단이 준비되며 청소는 물론, 이불빨래도 이틀에 한 번씩 된다. 인접한 송도병원이 모체인 이 곳에선 대형 수술이 아닌 일반 질환의 경우 무료로 진료·치료를 받을 수 있다.
회원들이 매일 들르는 카운터에 빈혈제를 비치해 두거나 1년에 두 번 정기검진을 받게 하고, 영양강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거나 물리치료, 운동처방을 해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이 "입주 뒤 건강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실버타운을 생동감있는 장소로 만들어 주는 것은 다양한 액션 프로그램. 영화감상, 컴퓨터강좌, 기수련, 시니어로빅, 영어회화, 민요교실 등 하루에 3∼4가지 프로그램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어 다양한 특기를 익힐 수 있다. 입주자 가운데 자신의 전공이나 특기를 살려 강사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오후에는 1∼2시간 거리의 박물관, 전시회 등으로 나들이를 나간다.
위치가 시내여서 은퇴하고서도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직까지 개인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회원도 있다. 주말이면 자녀들이 찾아오기에도 적당한 거리이다.
이곳 입주자들의 평균 연령은 78세. 그러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김성자 과장은 "비슷한 또래끼리 있으니, 서로 자극이 되는 것 같다"고 풀이한다. 현관 밖으로 나오면서도 공들여 화장하고 멋지게 차려 입는 등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2층에 위치한 미용실의 인기있는 서비스도 메이크업, 맛사지, 손톱손질 등이다. 집에 있었더라면, 자식들이 "그 나이에 무슨 립스틱이냐"고 눈치를 주었을 만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이에 따른 행동의 제약이 없다. 전체 입주자 가운데 부부로 들어와 있는 33세대를 제외하고는 다 싱글이라, 연애감정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짝사랑이나 삼각관계에 따른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스탭들의 역할이다. 입주자끼리 부르는 호칭도 '미스터 박'이나 '미세스 김' 식이다.
김성자 과장은 실버타운이 집보다 좋은 이유는로 적절한 의료와 프로그램으로 노년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보내게 하고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접촉으로 치매, 노화를 막아준다는 점을 꼽는다. 간혹 고령으로 걷는 것조차 힘든 입주자들도 식사시간이면 꼭 식당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우기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실버타운에 들어간다고 하면 자녀가 부모 공양의 의무를 방기한다는 오해를 받기 쉬워 자식이나 부모 모두 꺼리는 사례가 적지않다.
또 이 곳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버타운에 들어가려면 자립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노령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너싱홈'으로 옮겨야 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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