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회사에 막 입사한 미혼 남성입니다. 요즘 어머님과 형 사이의 불화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2층 연립주택에서 50대로 아직 현역이신 부모님과 저, 기술자인 형, 주부인 형수, 조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2층에, 형의 가족은 1층에 살고 있지요.얼마 전 어머님이 과거 저희들 때문에 진 빚을 형이 대신 갚아주기를 바라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형은 "아직 여력이 없으니 온 식구가 지하실에 내려가 살며 1, 2층을 세 주어 갚자"는 주장이고, 어머님은 "지하실은 좁은데다 체면상 내려가 살 수 없다. 소액 전세금을 빼줄 터이니 분가해 나가라. 그러면 1층을 제 값에 세를 주어 빚을 갚겠다"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부모 빚을 갚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지라 괴로워요.
(서울 구로동 현씨)
답>두 분 사이에 끼어 고민하시는 모습에 동정이 갑니다. 어머님은 '자녀교육비용과 결혼비용으로 겪는 부모의 고통'을 강조하시고, 형은 '공동희생 정신'으로 방패막이를 하니 막상막하이군요. 불화의 씨앗이 얼핏 돈 때문으로 보이지만 실은 '고부갈등'이 그 핵심입니다. 형수를 제외한 네 어른들이 버는 마당에 빚은 화목단결하면 대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요. 고부간 성격과 기대했던 바에서 차이가 나서 그리된 것이겠는데, 그 자세한 내용이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추측컨대 시어머니 눈에는 며느리가 '빈손으로 시집와 놀고 먹으며, 살림할 줄 모르고, 지친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밖으로 돌며, 어미와 자식 사이를 이간하는 여우'로 보일 터이지요. 그러니 각시 치마폭에 옴짝 못하는 형에 분노해 '나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형수도 나름대로 말 못 할 시집살이 고통이 있겠지만 형이 아내 대신 나서주는군요.
이럴 때 미혼인 동거자식들은 중립이 정도입니다. 오래 함께 살았던 어머니가 심정적으로는 더 가깝게 느껴지겠지만 자신도 조만간 결혼해서 비슷한 어려움을 당할지 모르니 엄정중립을 지키면서 양쪽 모두에 좋게 대하십시오. 그것이 어려우면 양쪽 모두를 멀리 하십시오. 신입사원으로 받는 월급은 자신을 위해 많이 저축하시고 어머니 빚을 갚는 데는 쓰지 마십시오.
다만 상담에 응하는 제 의견은 형이 어머니에게서 얻은 약간의 전세밑천에다 밖에서 빌린 돈을 합쳐 당당하게 따로 나가 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 빚도 갚아지고, 형수도 편해지지요. 형네와 어머니 사이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리라고 보며, 더 시간이 가면 늙으신 부모님이 조금씩 형에게 심신을 기대게될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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