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랜만에 일본 출장을 가서 속으로 많이 놀랐다. 혼슈(本州) 남쪽 지방을 버스로 돌며 본 농촌풍경이 부럽도록 아름다웠다. 가는 곳마다 단아한 2층 농가와 그 주위로 깨끗하게 다듬어진 농토와 도로, 마을을 감싸 안은 울창한 숲과 시내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일본인은 경제가 어려운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농촌은, 아니 국토는 살갑게 가꿔 왔구나! 하는 감탄이 신음처럼 흘러 나왔다. 농촌이 유럽의 낭만적인 전원풍경을 닮아가고 있었다.일본 농촌이 아름다운 것은 '마을 만들기(마치 즈쿠리)' 운동의 결과다. 건축학자 엔도 야스히로에 따르면 '마을 만들기'는 1962년 나고야(名古屋)에서 처음 등장했다. 70년대는 도로건설이나 도시계획에 주민이 참여하면서 깃발처럼 퍼졌고, 80년대에는 마을의 개성화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다시 90년대부터는 사람과 사람, 물리적 환경과 마음을 결합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40년 간의 캠페인 덕분에 국토가 그렇게 아름다워졌다.
우리에게도 그런 의욕의 시대가 있었다. '붐바 붐바 붐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행진곡풍의 '새마을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지던 무렵이 있었다. 농민은 융자나 사채를 얻은 돈으로 서둘러 초가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마을 길도 정비한 것이 70년대 초였다. 그러나 관 주도로 전개된 새마을 운동은 국토를 아름답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 일방적이고 거칠어서, 거기서 끝이 났다. 편리함을 얻었으나, 아름다움을 추구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농경민 후예인 우리의 정서적 바탕에는 자연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나지막한 산과 구릉, 그 아래로 유순하게 흐르는 시내와 강, 자연에 거역하지 않는 집과 마을의 모습이 유토피아 같은 원형으로 남아 있다. 국토를 크게 디자인했던 새마을 운동의 주역이자 독재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열정을 갖고 고집했던 그린벨트정책도 훼손돼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지방자치제의 시작은 아름다운 국토 가꾸기의 출발신호가 될 줄 알았다. 결과는 반대였다. 지자체마다 투기꾼과 결탁하여 국토 부수기가 한창이다. 지구 어디에도 이처럼 천박한 탐욕과 상업주의로 국토를 급속도로 기형화 시키는 나라는 없다.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국토를 이렇게 유린해도 되는 것일까. 송사리나 개구리의 삶에 애틋한 환경단체도 왜 인간의 마을 부수기에는 침묵하는 걸까.
건축가들을 고발하고 싶다. 그들은 싸구려 건물을 양산하여 국토를 망쳐 왔다. 도시는 싸구려 건물로 뒤덮이고, 새로 지은 주택은 온통 국적불명의 슬래브형 집이다. 일본이 아름다운 것은 농가 대부분이 전통양식을 존중한 주택이기 때문이다. 건축문화는 한 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현수막이 내걸렸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참여정부의 출범을 축하합니다.' 현수막은 대형 건물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다. 시각공해를 일으키는 과공(過恭)이 느끼하다. 정부 교체를 실감하는 것은 그런 과공 덕이 아니다. 새 정부가 그런 광고나 간판을 정비하기로 했다는 역설 때문이다. 정부는 한 업소 당 간판수를 3∼4개에서 2개로 제한키로 했다. 새 정부가 환부를 바로 진단한 것 같아 반갑기 그지 없다. 간판의 크기도 제한해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민관이 힘을 합쳐 국토 가꾸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 사는 형편은 나아지는데 좁은 국토는 망가져 가는 것을 보며, 우리의 짧은 안목에 한숨 짓는다. 우리 식 건물에 대한 모색과 합의가 시급하다. 건축가들은 한국인의 미감과 정서에 어울리는 살림집 모델과 건물을 개발하고 보급시켜야 한다. 빈사상태로 신음하는 국토 위에서 간절한 희망을 되뇐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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