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인 '세빗(CeBIT) 2003'은 ICT 산업의 우울한 현실속에서도 미래를 모색하려는 열기로 뜨거웠다. 하노버 세빗은 ICT 산업의 침체와 독일 경제의 불황 속에서 열렸다. 지난해에는 7,000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했으나 올해에는 6,500개 업체만 참석하는 등 규모는 줄어들었다. 미국의 CNN이 "독일 경제의 침체 때문에 올해 세빗은 가라앉은 분위기"라고 전할 정도였다. 36만㎡의 전시장, 26개 홀에서 IT 장비와 시스템, 통신과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IT보안과 카드 기술 등 8개 주제로 진행된 세빗 2003의 현장을 소개한다.개황 세빗은 전시 뿐 아니라 다양한 회의를 통해 IT의 미래를 조망하기도 했다. 13일부터 18일까지 컨벤션 센터의 여러 회의실에서 '무선 기술이 인터넷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웹 보안/핵심적 인프라' 등 21건의 회의가 공개·비공개로 열렸다.
세빗을 주관한 도이체 메스 AG의 외르크 숌부르크 총괄이사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던 ICT 산업이 침체를 겪고 있지만 미국, 특히 아시아에서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세빗은 ICT 산업의 부활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가 "통신, IT, 디지털 사진 등 관련 기술의 점증하는 통합과 융합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무선 랜(LAN), IT 보안, 저장 소프트웨어 등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 화두는 멀티미디어 메시징 서비스(MMS)와 카메라폰이었다. MMS는 음성 통화는 물론 문서와 사진 등을 함께 보낼 수 있는 통신 서비스다. 이번 전시회 기간동안 MMS는 이동통신의 '구원자'로서 예우 받았다. 이동통신 분야에서 우리나라 업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제3세대 이동통신(UMTS) 휴대폰(SGH-Z100)으로 쌍방향 동화상 통화(비디오 텔레포니)를 시연했다. 하지만 이번 동화상 통화 시연은 64kbps 환경에서 이뤄져 화면이 부자연스럽고, 음성도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는 등 아직까지는 개선돼야 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줬다. 이 동화상 통화는 슈뢰더 독일 총리 부부가 전시장에서 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니 에릭슨의 스마트폰(휴대폰과 개인휴대단말기(PDA)가 결합된 제품)인 P800도 이번 전시회에서 반드시 봐야 할 이동통신 제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폰 뒤쪽에 붙어있고, MP3 플레이어는 물론 동화상을 볼 수 있는 MPEG4 기능도 갖추고 있다. 무선 인터넷 접속은 기본이다. 고객의 사용 편의를 위해 터치 스크린 방식의 펜과 조그 다이얼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했고, 12메가의 메모리는 메모리 스틱을 이용해 확장할 수 있다.
또 유럽형 이동통신 규격인 GSM의 제3세대인 UMTS가 언제부터 상용화될 지도 관심사였다. UMTS는 우리나라의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인 W-CDMA와 같은 세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5세대인 cdma 1x EV-DO를 서비스하고 있다. 영국의 이동통신 회사인 허치슨은 이미 3월초에 일본의 NEC와 미국 모토로라의 휴대폰으로 UMTS 서비스를 시작했다.
LG전자는 이번 전시회에서 2세대인 GSM과 2.5세대인 GPRS는 물론 UMTS를 모두 쓸 수 있는 듀얼 밴드 3세대 휴대폰(모델명: LG-U8100)을 데뷔시키며 유럽의 제3세대 휴대폰 시장 공략에 나섰다. LG전자의 이 휴대폰은 26만 컬러의 대형 TFT-LCD에 30만 화소급 내장형 카메라를 장착했고, 동화상 통화, VOD, MMS 등 초고속 데이터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밖에도 미국의 모토로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쿼드 밴드(quad-band) 휴대폰(모델명:V600) 시제품을 내놓았다. 또 일본의 파나소닉이 내놓은 65g짜리 초경량 휴대폰과 번호를 둥글게 배열해 게임을 하기 쉽게 만든 노키아의 휴대폰이 참관자들의 발길을 잡았다.
디스플레이와 무선 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액정화면(LCD)이 관심 품목이었다. 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샤프, 필립스 등과 함께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성능과 디자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54인치의 LCD TV를 내놓았다. LCD TV는 같은 화질을 구현하면서도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 54인치 LCD TV를 시판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스피커 내장형 LCD(모델명 플래트론)와 베젤(모니터와 스크린사이의 간격)이 18㎜에 불과한 날렵한 LCD를 출품, 주목을 받았다. LG전자 박상면 부장은 "LCD 분야에서는 해상도, 밝기, 크기 및 디자인으로 승부하는데 우리나라 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ACT컨사가 출품한 3차원 영상의 LCD는 모니터에서 68㎝ 떨어진 거리에서 어지럽지 않은 상태에서 3차원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LCD와 함께 양 축을 형성하고 있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일명 벽걸이) TV도 여전히 각광 받았다. LG전자는 이번 전시회에서 세계 최고의 밝기(1,000 칸델라)와 명암비(1,000:1)를 자랑하는 K/K PDP를 출품, 관람객 및 유럽지역 딜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크기의 63인치 PDP를 전시했다.
무선 랜의 재조명도 이뤄졌다. 지금까지 대형 금융기관이나 우량 기업에서 무선 랜 쓰기를 꺼리고,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주로 무선 랜의 보안 취약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는 보안 취약성이 기술적으로 보완되면서 무선 랜이 새로운 물결을 이룰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특히 무선 랜이 홈 네트워킹 분야를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시장 조사기관인 인스타트 엠디알(InStat/MDR)은 "무선 랜 기술의 발달로 향후 무선 랜이 홈 네트워킹 시스템에서 PC 제품과 엔터테인먼트 제품을 연결하는 기반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전자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미디어관에 응접실 형태의 무대를 설치, 홈 네트워킹을 시연해 호평 받았다.
기타 KOTRA는 국내 50여개 중소기업과 함께 한국관을 개관, 바이어 유치에 열을 올렸다. KOTRA 관계자는 "전시회 2개월 전부터 유럽지역의 19개 무역관에서 공동으로 바이어 유치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전시회 기간 중 500여명의 바이어가 한국관을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KOTRA와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한국관은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설된 것이다.
세빗 개막 하루전인 11일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계 정보통신 전문가들의 모임인 'ICT 세계포럼@세빗' 행사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와 ICT 업계의 미래'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했다. 윤 부회장은 기조연설에서 "ICT 분야는 현재 침체에 빠져 있지만 디지털 컨버전스(융합)의 가속화로 그 미래는 밝다"고 역설했다. 또 삼성전자의 이재용 상무가 전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하노버(독일)=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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