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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5> 시안·청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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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5> 시안·청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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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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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 중국 시안(西安)에서는 한끼 저녁식사로 36만 위안(한화 약 5,700만원)짜리 최고급 요리를 시켜 먹은 사람들이 화제가 됐다. 말 그대로 '장안(長安·시안의 옛 이름)의 화제'였다. 이들의 식사는 옛날 황제들이 먹었다는 '만한취엔시(滿漢全席)'라는 특별요리. 일반 노동자 월급(평균 500위안)의 600배가 넘는 한끼 식사 값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자 공안당국까지 나서 조사했으나 "참석자 가운데 고위 관료는 없었다"는 게 조사내용의 전부였다.

이는 중국 서부 대개발 이후 나타난 변화에 대한 상징적인 일화이다. 홍콩과 대만, 그리고 개발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연해지역의 자본이 서부 개발의 바람을 타고 서진·북상하면서 충칭(重慶), 청뚜(成都)를 거쳐 종착지인 시안까지 돈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는 것이다.

36만 위안 짜리 식사는 '졸부들의 과시' 정도로 치부하더라도 부동산 개발과 소비 증가의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다. 한중합작기업인 서안화천통신유한공사의 한일수(韓鎰洙) 총경리(사장)는 "중국에 온지 1년 남짓 됐지만 그 동안의 변화는 마치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살고 있는 시안시 남쪽 고신(高新·첨단)기술산업개발구 내 고급 아파트촌에는 최근 최고급 흰색 벤츠를 몰고 다니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홍콩 등 외부 자본이 빠르게 몰리고 있는 결과"라는 설명이다. 아파트 값도 불과 1년 사이에 50%나 치솟았다. 도시 곳곳에 건설 붐이 일고 있지만, 한화로 평당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고급 아파트들이 짓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다.

이른 봄 시안은 안개에 파묻혀 3,000년 고도(古都)의 신비를 더한다. 중국 대륙 한복판, 중원(中原)에 자리잡은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중국문화의 요람이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도읍을 정하기 전부터 이미 주(周)의 도읍이었고, 이후 진(秦) 한(漢) 당(唐) 등 13개 왕조가 1,180년간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높이 12m, 총길이 12㎞의 장방형 성벽 밖으로 치솟고 있는 고층 빌딩들이 2,200년 전 진시황 병마용에 묻힌 전사들의 모습과 오버랩을 이루며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시안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제 막 현대화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면 청뚜는 진작부터 서부 최대의 소비·유통 중심 도시였다.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해 '천부지국'(天府之國·하늘의 곳간)이라 불렸던 쓰촨(四川)성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중국 전체에서도 소비성향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청뚜 시내 중심가인 쭝푸루(總府路)는 대형 백화점이 몰려 있는 대표적인 쇼핑거리이다. 대만계 타이핑양(太平洋) 백화점과 본토의 왕푸징(王府井) 백화점이 큰 길을 사이에 두고 경합하고 있다. 평일인데도 백화점 내부와 두 백화점을 잇는 육교는 북적이는 쇼핑객들로 어깨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한 블록 옆에는 말레이시아계 바이성(百盛) 백화점이 있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런민둥루(人民東路)에는 값 비싼 명품만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한 런허춘톈(仁和春天)과 런민상창(人民商場), 이텅양화탕(伊騰洋華堂) 등 토종 및 외국계 백화점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타이핑양 백화점의 에릭 서(蘇伯勳) 총경리는 "1997년까지만 해도 외자 백화점은 2곳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개나 된다"며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전자제품 전문 매장 등을 포함해 청뚜 시내에 대형 쇼핑센터가 30여 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매출도 급신장하고 있다. 타이핑양의 경우 첫 해인 94년 1억5,000만 위안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5억1,000만 위안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고객 1인당 구매액도 초기 150∼200 위안에서 최근에는 400∼500 위안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 백화점은 이 같은 신장을 바탕으로 본점 외에 이미 1개의 분점을 개설한 데 이어 2번째 분점 개설을 준비 중이다.

대만 출신인 蘇 총경리는 "백화점 구매자의 주류는 주로 20대의 젊은 층인데, 소득수준을 감안할 때 이들의 소비행태에 놀랄 때가 많다"며 "대졸자 임금의 몇 배나 되는 가죽 옷을 망설임 없이 사는 젊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돈을 벌면 집에 쌓아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쓰촨성과 청뚜 사람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전통적으로 저축보다 소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쓰촨성 정부 관계자는 "장기 저리 융자 등 주택 구입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젊은 이들이 목돈을 저축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머리만 잘 쓰면 돈 벌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창업 붐이 활발하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은 "서울에선 남산서 돌 던지면 김, 이, 박씨 중 한명이 맞는다고 하지만 이곳에선 돌을 던져 맞는 사람 중 2명은 총경리(사장), 1명은 부총경리(부사장)라는 말이 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시안·청뚜=김상철기자 sckim@hk.co.kr

■신시왕그룹 자오윈신 총재주임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과 서부 대개발 사업이 기업들에게 많은 기회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 서부의 대표 기업이면서 중국 전체로도 손꼽히는 민영기업의 하나인 청뚜의 신시왕 (新希望) 그룹은 중국의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의 모델이다. 사료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부동산 금융 화학업종까지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0억 위안(한화 6,400억원), 올해는 축산부문의 성장에 힘입어 55억 위안에 이를 전망이다.

자오윈신(趙音勻新·사진) 그룹 총재주임(회장 비서실장)은 "어렵게 창업해 한 우물을 팠던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개혁·개방정책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정부가 서부 대개발 정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대해 세금과 대출 등에서 혜택을 주고 있어 다양한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시왕 그룹의 모태는 류융옌(劉永言)·융싱(永行)·융메이(永美)·융하오(永好) 4형제가 1982년 창업한 '시왕'(希望)이란 축산회사. 당시만 해도 태국 업체가 사료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발 기업인 시왕은 저가 전략으로 도전에 나서 결국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92년 4형제가 분사하기 전 시왕그룹의 총 매출액은 100억 위안에 달했다. 본업인 사료업은 넷째인 융하오 회장의 신시왕 그룹의 주력 사업이 됐고, 나머지 형제들은 알루미늄 에어컨 호텔 등을 떼어내 운영하고 있다.

요즈음 신시왕 그룹의 최대 관심은 사업 다각화다. 사료와 연관된 축산업을 확대하는 한편 서부 대개발로 급성장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청뚜 시내 한복판에 건설한 24만㎡ 규모의 고급 주택단지의 분양을 거의 마무리하고 다시 40만㎡ 규모의 미니 신도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자오 주임은 "앞으로 기초시설 건설 및 주택·부동산 개발 사업이 유망할 것"이라며 "400만 위안(한화 6억4,000만원)을 호가하는 별장형 아파트(120평)가 쉽게 팔릴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청뚜=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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