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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보는 세상/ 브라운 아이즈 "비오는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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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보는 세상/ 브라운 아이즈 "비오는 압구정"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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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은 소위 오렌지족, 야타족으로 불리던 졸부 2세들이 하룻밤에 수백만원의 용돈을 쓰며 흥청거리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94년 엽기적 살인 행각을 벌이다가 검거된 지존파는 "압구정 오렌지족을 죽이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압구정동은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상의 한쪽 극단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없는 자에게는 가진 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가요에서도 그런 이미지는 그대로였다. '거리엔 모두 텅 빈 눈으로 오만한 미소를 짓는 공주뿐이야/ 내용 없는 자존심 값싼 유행을 따르는 건 결코 진실은 될 수 없잖아'(신성우, 'Rock'n Roll+압구정동, 공주병', 1993) '돈 없어도 차 없어도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압구정동…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피해 봤어…있는 놈은 항상 있지 없는 놈은 항상 없지'(DJ DOC, '부익부 빈익빈', 2000) '내가 좋아하는 흰색 벤츠 몰고서 오늘도 압구정동 거릴 누비며 산책 나왔어/ 까맣게 썬팅이 된 창문 내리면 여자들 모두 나를 알아보고 황홀해 하지'(거리의 시인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시간들', 2001)

그런 압구정동의 가요 속 이미지가 달라졌다. '점점'의 후속곡으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브라운아이즈(사진)의 '비오는 압구정'에는 '부의 상징'이나 '없는 것에 대한 울분'은 없다. '비오는 압구정 골목길에서 그댈 기다리다가 나 혼자 술에 취한 밤 혹시나 그댈 마주칠까 봐'라는 노래 속의 압구정동은 서울에 있는 한 동네일 뿐이다. "멤버 중 윤건이 강남에서 나서 자랐고 생활 반경이 압구정동이다 보니 자연히 등장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는 게 브라운아이즈의 설명이다.

힙합 그룹 CB MASS의 '동네 한바퀴' 속의 압구정동에는 정겨움까지 가미돼 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들어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압구정동 이곳은 과소비의 거리 온통 사치로 물들인 그녀들의 갈색머리 어김없이 왼팔에 걸친 명품 백'. 힙합은 현실 비판을 담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듯 압구정동을 '사치의 거리'라고 비판하긴 했지만 이들에게 압구정동은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 '동네 한 바퀴'에 맞닿아 있는,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동네일 뿐이다.

안정적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주로 압구정동에서 놀고, 밤 9시 뉴스 보고 신문 읽으면서 세상을 논하고, 바에서 미켈롭이나 KGB 맥주를 마시며 자란 강남 출신 젊은 가수들에게 이제 압구정동은 개인적 감성 외의 다른 기억을 일깨우진 않는 듯하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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