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정권 초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경기후퇴가 다소 염려된다고 해서 개혁을 늦춰서는 안된다." 김대중 정권 초기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사진) 금융통화위원은 17일 "일본처럼 개혁은 하지않고 경기 부양만 하다간 장기 불황에 빠진다"며 "개혁을 지속적으로 해야 경제가 안정된다"고 강조했다.―지난 주 한 심포지엄에서 최근의 경제위기론이 반(反)개혁세력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허구(픽션)'라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이 위기는 아닌가.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작년말 이후 이라크전쟁 가능성, 북한 핵 문제 등이 겹치면서 올해 당초 예상(5.5%) 만큼 성장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올해는 4∼5년만에 순환적으로 찾아오는 경기후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위기국면은 아니다. 다만 일부에서 경제가 어려운데 개혁을 하면 더 나빠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개혁을 원하지 않는 세력들이 정면으로 (개혁에) 반대하지는 못하고 우회적으로 경제가 극도로 나빠질 것처럼 과장, 정권초기 개혁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개혁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지적 같은데.
"물론이다. 5년 전 성장률이 마이너스 6%로 떨어질 정도로 위기가 심각했을 때 추가경정예산을 2번이나 책정하며 부양책을 썼지만 개혁은 개혁대로 했다. 돌이켜보면 경제가 가장 어려울 때(98년) 개혁을 가장 많이 했고, 그 결과 1999∼2000년에 10%이상 고성장을 이뤘다. 개혁의 효과는 이렇듯 즉시 나타난다. 그러나 2001년에는 3%대 성장에 그쳤는데, 이는 2000∼2001년에 재벌의 숙원을 들어줘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등 개혁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개혁도 하고 경기부양책도 써야 한다. 우선 거시적인 부양책으로는 금융과 재정정책이 있는데, 우리 경제는 젊고 활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동원하면 그 효과가 미국보다 크게 나타난다. 다만, 금융정책은 전달경로가 길기 때문에 먼저 재정정책을 활용해 일시적인 적자재정을 감수하고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재정확대 이외의 다른 방안은.
"거시정책 이외에 미시적인 산업정책과 제도개선 등 2가지 카드가 더 있다. 우선 5년전 정보기술(IT) 붐을 통해 일본보다 앞서는 정보강국을 이뤘듯이 성장동력이 될만한 분야를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균형발전,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등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구체화, 강력히 추진하면 즉시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난다. 또 다른 방안은 제도 개선인데, 그 자체가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 증시 투명성 등 기업관련 제도와 관행이 미흡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한국이 분식회계 없는 나라로 인식되면 주가가 현재보다 50%는 뛸 것이다. 돈 안 들이는 너무 간단한 부양책이다."
―분식회계 근절 방안은.
"분식의 적발은 힘들지만 한번 적발되면 최대한 엄격하게 조치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분식 사건인 대우사태의 경우 책임자들이 작년 선거직후 모두 사면됐다. 이후 2개월만에 SK 총수를 분식회계로 구속했으니 개혁의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실정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경제에 '타격'이 아닌 '보약'이 된다."
―위기감이 자꾸 증폭되면 진짜 위기가 올 수도 있는데.
"극도로 어두운 발언과 언론보도가 반복되면 국민 스스로 잠재력을 망각하게 된다. 우리경제는 높은 근로의욕과 교육열 등 밝은 측면이 많다. 또 월드컵에서 표출된, 세대를 뛰어넘는 사회응집력을 정치적 리더십으로 끌어내 경제·사회발전의 자산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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