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바그다드에서는 이라크인의 대규모 반전 시위가 곳곳에서 열렸다. 유엔이 당초 철수하기로 한 이 날을 기해 열린 시위는 관제데모의 성격이 짙었지만 수 십 만 명이 운집해 장관을 이뤘다.바그다드 도심을 사방으로 가르는 왕복 6차선의 팔레스타인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공무원 경찰 군인 등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와 대형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도로를 가득 메웠다.
일부 시민들은 기관총과 중화기가 거치된 대형 지프 위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성전을 다짐했고,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도로를 일사불란하게 행군했다. 시위군중을 싣고 온 수 백 여 대의 버스와 트럭 등이 주변도로를 완전 점령해 바그다드 도심은 전면 마비됐다.
유엔개발계획(UNDP) 건물이 있는 아부-노아스 거리에는 예술가들이 중심이 된 이라크 시민 수 백 명이 모여 전단을 뿌리며 미국을 격렬히 성토했다.
팔레스타인 거리 인근 알-에트카르 여자 초·중학교도 이날 시위에 참가하느라 수업을 전폐했다. 운동장에는 시위에 참가하는 수 백 명의 여학생과 교사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 학교의 중3 여학생 반 압둘살람(16)이 "후세인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말하자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일제히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수녀인 비니니아 쇼쿠아라(63) 교장은 "미국의 속셈은 석유에 있기 때문에 후세인이 없더라도 전쟁을 벌일 것"이라며 "전쟁이 나면 맞서 싸우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국립 바그다드대 대학생들도 미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다르지 않았다. 캠퍼스에서 만난 사회학과 3학년 라나 몰타메드(22·여)는 "전혀 두렵지 않다. 전쟁이 우리의 생활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캠퍼스 어디에서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이 나라가 과연 전쟁을 할 나라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전쟁을 걱정하는 것은 이라크인이 아니라 외국인뿐인 듯 했다.
"후세인 대통령이 전쟁의 명분을 제공한 것은 아닌가"라고 묻자 한 학생은 "대통령이 전부 옳을 수는 없다. 실수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랍국가에서 대통령과 국민간의 가족적인 유대감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이라크 대학생 대부분은 집권 바트당 당원이다. 바트당에 가입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날 만난 대학생들이 당원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전쟁이 이들을 위축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한편 이라크 혁명지휘위원회는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15일 밤 포고령을 통해 이라크 영토를 4개 군사지역으로 나누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과 사촌 등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고 이라크 관영 INA 통신이 보도 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바그다드를 포함하고 있는 중앙지역은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로 정예 혁명수비대를 지휘하고 있는 쿠사이에게, 북부지역은 군력서열 2위인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에게 맡겨졌다. 또 남부지역은 후세인 대통령의 4촌인 알리 하산 알-마지드, 바그다드 남부의 푸라트-알-아우사트 지역은 혁명지휘위원회 위원인 미즈반 카데르 하디가 지휘를 맡았다. 포고령은 그러나 지대지 미사일과 항공자원의 사용 권한은 후세인 대통령에게만 있다고 밝혔다.
/바그다드=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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