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자주 온다니 반갑습니다. 한참 물이 오를 나무들을 위해서도, 어두운 땅속을 탈출하고픈 풀들의 여린 새싹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숲 혹은 산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산불 걱정이 줄어 더욱 그렇습니다.제가 국립수목원에서 일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디 어디 불이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전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나가 트럭에 몸을 싣고 떠나더군요. 얼마나 갑작스럽고 순간적이던지, 멍하니 혼자 남아 참으로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근처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에 불을 끄러 달려 나간 것이지요.
이젠 저도 3월부터 시작된 비상근무로 주말을 모두 반납하는 일도, 때가 되면 '산불조심' 모자를 쓰고 광릉 숲 길목에 서서 라이터 가지고 드나드는 사람을 막고, 논두렁 태우는 할아버지랑 입씨름 하는 일도 익숙해졌습니다. 심지어 식구들과 길을 가다가도 저 만치 산 자락에서 연기가 나면 먼 길이라도 들어가 확인해 봐야 마음이 편해지곤 합니다. 산림보호 업무와 무관한 연구직이 무슨 얘기냐구요? 업무가 무엇이든 적어도 산림공무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봄을 보냅니다. 아까시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할 즈음, 즉 숲이 더 이상 건조하지 않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즈음엔 산불이 났던 자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도 큰 걱정이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탄 자리에 나무를 심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냥 두는 것이 좋겠다는 연구결과가 얼마전 지상에 보도됐습니다. 그 후 강원도 동해 산불이 난 자리를 인공조림할 것이냐, 자연복원할 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나무라고 하는 그 영험한 생체를, 그리고 그들이 모여 이루어진 유기적인 복합체 숲을 한 가지 논리와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만 숲이 만들어졌던 옛날과 달리 지금 우리의 산은 자연복구가 가능한 곳이 많아졌고(물론 이 또한 지난 몇 십 년간 나무를 심어 가꾸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토양의 유실을 줄이고, 빨리 푸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는 아닙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숲, 100년 이상을 키운 나무 한 그루의 가치가 벤츠자동차 값을 맞먹는다는 그 나무는 인공림입니다. 자연복구된 나무는 숲을 금방 푸르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만일 흠없는 좋은 목재를 원한다면 그로부터 2∼3대를 거쳐 씨앗이 자란 나무가 되야 하니 나무를 심는 편이 옳습니다.
암반이 드러나는 등 조건이 좋지 않는 곳은 그냥 놔두니 자연복구가 돼 당장 푸르게 보일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굴참나무와 같은 활엽수가 주인인 숲은 여러가지를 고려해봐야 합니다. 자연복원이 좋은 여건의 숲이어도 만일 그 산의 주인이 "몇 년 아니 몇 십년을 기다리더라도 소나무 숲에서 크는 송이버섯을 보겠다"고 한다면 역시 소나무를 심어야 하겠지요.
3월 중 산불 근무일정표를 받아보다가, 불타버린 산을 푸른 숲으로 만드는 방법을 놓고 흑백논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걱정돼 조금 길게 얘기했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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