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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제주 한림읍일대 "손바닥 선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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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제주 한림읍일대 "손바닥 선인장 "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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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을 벗어나 해안도로와 나란히 놓인 서남쪽 12번 국도를 따라 40여 분. 한림읍 귀덕리를 지나면서부터 도로 가에 언뜻언뜻 낯선 관목 군락이 눈에 띈다. 선눈에는 어디나 흔히 있는 회양목 군락쯤으로 여기기 십상. 하지만 그게 이곳 주민들의 주소득원인 '손바닥 선인장'이다. 주민들은 선인장을 하늘이 내린 '선물(仙物)'이라고 했다.국내 유일의 선인장 자생지로 아예 마을 전체가 선인장 밭이라고 불러도 좋을 한림읍 월령리. 100여 호 남짓 되는 마을 집들도 관목처럼 낮은 키로 협재 바다의 수평선과 나란히 섰다. 개중에 두드러지는 서너 채의 2층 양옥. 한 주민은 "저게 모두 선인장 농사로 지은 집"이라고 말했다.

마을에 선인장이 뿌리를 내린 게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 않다. 문헌은 물론이고, 구전돼 온 바도 없어 200년 전부터라는 이도 있고, 500년도 더 됐다는 이도 있다. 마을 토박이인 강정자(67·여)씨는 "'동당 하르방(할아버지·설문대 할망과 함께 제주섬을 만들었다는 신선)'이 바당(바다)에서 이파리 하나를 데껴주낭(건져준 게) 선인장이 됐당 하더라"는, 어릴 적 조부가 들려준 전설을 전했다.

손바닥만한 줄기가 혹처럼 매달려 자라는 멕시코 원산 '부채 선인장'을 마을에서는 그냥 손바닥 선인장이라고 불렀다. 줄기 끝에 돋는 가시가 생선 통가시 저리 가라 할 만큼 억센 데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질리도록 달리는 진자주빛 열매도 시고 떫다. 6월이면 피는 노란 꽃도 유채꽃의 화려함에 가려 빛을 못봤다. 생명력은 또 얼마나 질기던지 흙 한 톨 없는 갯바위 위에도 뿌리를 박고 새끼를 쳐대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고 했다. 강씨는 "집터를 볼라고 해도 선인장 뽑아 버리는 게 제일 큰 일이었다"고 했다. 험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잔돌을 두 겹 세 겹으로 쌓아 올린 울이나 밭자락 '잣담(자갈 돌담)' 위에 한 두 뿌리 던져두면 천연 방범창살 역할을 해내던 게 고작이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워낙 지천이라 고마운 줄 모르고 썼지만, 선인장은 없어서는 안될 약용식물이기도 했다. "환갑이 다 되도록 똥 누면서 힘줘본 적 없다"는 양순정(여·한림읍 금릉리)씨는 "선인장이 변비에도 좋고, 피부미용에도 막 좋아마시"라고 했다. 식구 중에 누가 부스럼이나 종기라도 나면 어른들은 지금도 선인장 한 줄기 끊어오라고 시킨다. 가시를 떼어내고 펑퍼짐한 배를 갈라 종기에다 싸매두면 2, 3일이면 고름이 터져 나오고 씻은 듯이 아문다는 것. '빨간 약'이나 '안티푸라민'이 귀하던 시절, 찰과상이나 타박상에도 선인장은 특효였다.

선인장이 뜨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 감귤 값이 기울면서 대체작목을 찾던 북제주군 농업기술센터가 선인장의 약리효과에 착안, 시험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 경동시장 등지 한약재 도매상들의 주문도 점차 늘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자생 선인장이 주류였던 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자, 아이들 소꿉 반찬으로나 쓰이던 열매 가격이 ㎏당 8,000∼1만원을 호가했다. 땅 1평에서 매년 약 7∼10㎏의 열매가 수확되니 주민들에게 선인장은 하루 아침에 금덩이로 바뀐 셈. 월령리는 물론 인근 마을들까지 가세, 95년 23ha에 불과하던 재배면적은 98년 323ha로 폭증했다. 그리고 들이닥친 IMF사태. 주민들은 "그 때 묘종 사다가 농사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빚만 정(지고) 땅을 갈아 엎었주"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최근에는 재배면적이 줄어 4년째 199ha선에 그치고, 열매 단가는 ㎏당 600∼1,0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만한 소득이 없다"고 했다.

토질이 척박해 밭이라 해도 흙 반, 모래 반. 그나마 손바닥만한 조각밭이 전부여서 100평 넘는 두락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감귤만 해도 남쪽 서귀포야 바닷가라도 심지만, 북쪽은 겨울이면 북서풍에 조풍(潮風·짠 바람)까지 불어 버티지를 못한다고 했다. 감자나 마늘 양배추 등속을 심기도 하지만 300평 조수입이 80만∼120만원. 거기서 종자값에 생산비 경영비 등 '차 때고 포 때고 나면' 순이익은 40만∼50만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선인장은 종자나 비료 농약값 안 들고 손도 거의 타지 않아 수확 한 철 품삯이 고작인 만큼 2톤 수확해서 ㎏당 600원에 넘겨도 120만원 조수입이 순이익과 맞먹는다는 계산이다. "선인장이야 약을 침수까, 비료를 줌수까. 열매 달면 일손 사서 수확하면 그만이라마시." 그래서 주민들은 당장 가격이 욕심에 안차도, '(해녀)물질' 때가 아닌 한, 선인장 수확에 매달린다.

11일 오후 한림읍 금릉리 북제주군 농업기술센터 직영농장. 일품나온 아주머니들의 선인장 줄기 수확이 한창이었다. 줄기는 동결건조 분말로 가공해 화장품회사에 납품한다. 아주머니들은 가시를 막기 위해 몸빼 바지 서너 벌에 비옷까지 챙겨 입은 차림새다. 장갑도 고무장갑 위에 코팅된 목장갑을 꼈다. 한 사람이 하루 400㎏ 정도를 수확한다고 했다. 선인장이 몸에 좋으냐고 묻자 "눈이고 간이고, 기관지고, 변비고 하나또 안 좋은 데가 없어양" "우리 마을에는 죽는 사람도 없다마시"라며 함께 웃었다.

그간 민간업체 10여 곳에서 개발한 선인장 원료 상품도 비누, 차, 꿀, 음료수, 한과 등 수십 종에 이르고, 최근에는 대도시 일부 대형 할인점 등서도 주문이 있다고 했다. 농업기술센터는 멕시코 등서 들여 온 샐러드나 스테이크용 선인장과 열매를 바로 먹을 수 있는 선인장 등도 시험재배에 나섰다. 노지재배에 성공하면 시장성을 봐가며 보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즙을 내고 남은 과육 찌꺼기로 저지방 돼지사료를 개발, 시험중이기도 하다. "기온이 높고 비가 적어 선인장 노지재배가 되는 곳은 제주에서도 여기 뿐입니다. 선인장으로 힘차게 일어서 볼랍니다." 96년부터 선인장 연구·보급에 매달려 온 문영인(48) 연구개발계장은 힘주어 말했다.

/북제주=글·사진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동맥경화·당뇨 예방에 좋아" "건강보조식품" 승인에 도전

선인장이 안고 있는 숙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기능성 건강식품' 등재를 받아내는 일이다.

2000년과 2001년 '건강보조식품' 등록 신청을 했지만 지표성분(약효 기능물질) 조사 미비 등 사유로 퇴짜를 먹었다. 본초강목 등 중국 한약서에는 선인장 효능이 나오지만 동의보감에 소개된 바가 없어 곤란을 겪었다. 한 관계자는 "허준선생이 제주도 답사는 안했던가 봐요"라고 했다.

북제주군농업기술센터는 최근 국비(2억7,500만원) 등 4억2,300만원을 들여 경희대·부경대 약학과, 서울대병원 천연물과학연구소 등과 공동연구, 손바닥선인장의 항동맥경화 항당뇨 기관지 이완 항위염 효과 등에 효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독성·기능성 시험 외에 일부 지표성분 추출에도 성공, 올 8월에 다시 등재 신청을 낼 계획이다. 선인장의 건강보조식품 승인이 나면 단일 작목으로는 인삼, 알로에에 이어 3번째가 되는 셈. 기술센터는 제약회사나 대기업 식품회사 등의 주문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재배면적이 지금보다 2배쯤 늘어도 판로를 찾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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