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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국정원 도청" 의혹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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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국정원 도청" 의혹 ①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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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 청와대 보고를 마치고 국정원으로 돌아온 신건(辛建) 국정원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국정원장실 직원들은 바짝 긴장했고 그 소식은 곧바로 간부들에게도 전해졌다. 신 원장의 심기가 워낙 좋지 않아 간부들은 "청와대에서 언짢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짐작만 했을 뿐 물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며칠 지나 간부들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그 날 있었던 일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국정원 관계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 원장은 청와대가 정부 요인 20명의 통화 보안을 위해 비화기 휴대폰을 사용하는 방안을 극비리에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안주섭(安周燮) 경호실장(현 국가보훈처장)이 제안한 것으로 청와대 내에서도 2, 3명만이 알고 있던 극비 사항이었다.

당시 정국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연이어 '국정원 도청보고서'라는 문건을 공개하며 청와대와 국정원을 압박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국회 정보위의 한 의원은 "문건 공개 후 열린 국회 정보위 비공개회의에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신 원장을 향해 '두 달 후면 당신들 사법처리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고 신 원장은 '어디다 협박이냐'며 책상을 치는 등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술회했다. 아차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국면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서는 정부 요인의 비화기 휴대폰 사용을 두고 볼 수 없는 처지였다.

신 원장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현 기술 수준에서 휴대폰 통화는 감청하지 못한다"고 보고했고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에게 "만약 정부 요인들이 비화기 휴대폰을 쓰면 국정원의 도청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항의했다.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 7조에 의해 고등법원 수석 부장판사의 허가나 대통령의 승인 하에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조치이고, 도청은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행위다.

박 실장은 신 원장의 항의 겸 설득을 수용, 이 방안을 '없던 일'로 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보고서라는 문건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박 실장은 국정원의 도청 가능성을 의심했다고 한다. 특히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의원이 12월 1일 추가 폭로를 통해 박 실장의 통화기록이라며 5건을 제시하자 박 실장은 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내 전화도 도청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신 원장은 "내가 부임한 이후에는 불법적인 도청은 절대 없었다"면서 "더욱이 휴대폰 감청은 가능하지 않으며 국가 정보기관이 이렇게 말하면 믿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 원장은 "나는 법조인 출신"이라며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을 조목조목 반박하자 박 실장도 수긍했다고 한다.

신 원장과의 통화 후 박 실장은 한나라당 문건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박 실장은 모 방송국 보도국장에 검찰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는 대목, 박준영(朴晙瑩) 전 국정홍보처장에게 취업 알선 건을 물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출입 기자들에게 다 설명해 알려진 내용"이라며 "이것이 도청자료로 각색된 모양"이라고 말했다.

도청 논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고소, 고발로 검찰 수사로까지 비화했다. 여론의 역풍에 한나라당도 추가 폭로를 자제, 일단 사건이 잠복했지만 우리 사회에 도청 공포와 불신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이 와중에 한 일간지가 1면 톱 기사로 '국정원이 미국 CCS 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G-COM사의 CDMA 방식 휴대폰 감청장비 50대를 구입,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간지와 월간지들도 앞 다퉈 휴대폰의 감청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그 증거로 CCS사의 'G-COM 2056'이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신 건 원장은 직접 나서 "CCS사에 확인한 결과 그런 장비는 존재하지 않으며 수입한 적도 없다"면서 해당 언론사와 한나라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 원장은 또 "과거 아나로그 방식이나 유럽의 GSM 방식 휴대폰은 감청이 되지만 암호체계의 CDMA 방식은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감청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점은 과연 CDMA가 감청되느냐, 또 CCS사의 G-COM 2056이라는 감청장비가 실제 존재하느냐, 이 장비가 국내에 반입됐느냐로 모아졌다. 이 모델은 베일에 싸여있다가 갑자기 드러난 것처럼 알려졌지만, 이미 2000년 10월 정통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의원이 제기한 내용을 언론들이 거의 그대로 재탕한 것이었다. 논란의 진실을 CCS사가 쥐고 있는 형국이 됐으나 CCS사는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CCS사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몸이 달은 국정원은 비공개 수칙을 어겨가면서까지 CCS사와의 접촉 사실을 밝혔다. 국정원 간부 H씨는 "2002년 6월 요원을 보내 CCS사와 접촉했으나 CCS사가 제품을 보여주지는 않고 선금을 요구하는 등 신뢰성 없는 태도를 보여 감청장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에서 CCS사와의 거래를 통해 손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1999년 JC.COM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강남원씨는 CDMA 도·감청 장비를 판매한다는 CCS사의 광고를 접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뉴저지에 있는 이 회사를 방문했다. CCS사는 "50만 달러를 내면 한국에서 판매할 독점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정보기관 출신인 강씨는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이 CDMA 감청장비를 필요로 할 것으로 판단, 계약을 체결하고 선금으로 15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CCS사가 그 해 11월 한국에 감청 장비를 들여와 시연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면서 강씨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강씨의 증언. "중도금을 줘야 하는 날짜(12월 25일)가 됐는데도 CCS사는 '기술자가 외국 출장 중이어서 시연을 12월 말이나 다음해(2000년) 1월로 연기하자'면서도 중도금 15만 달러의 송금을 요구했다. 그래서 돈을 보내지 않았더니 CCS사는 계약을 파기했다. 국제변호사와 함께 계약서를 살펴보니 CDMA 감청장비를 특정하지 않고 CCS사의 감청장비 판매권을 준다는 식으로 돼있었다. 변호사는 승소가 어렵다며 포기하라고 했다. 뉴욕을 방문했을 때 계약서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게 실수였다. 나는 속았다고 생각한다."

차량위치 추적시스템(GPS)을 개발하는 (주)통인물류 정보통신의 최효식 사장은 최근 CCS사로부터 감청장비에 대한 의미있는 정보를 얻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CCS사와 GPS 합자회사를 추진하다가 분쟁에 휘말려 있다.

최씨의 증언. "전임 사장 L씨가 합작회사 설립을 목적으로 이사회의 승인없이 CCS사에 돈을 송금했다. 나중에 보니 CCS사는 우리의 기술, 인력을 모두 가져가고 이름만 빌려주겠다는 식이었다. 결국 이 협상은 파기됐으며 L 전 사장은 물러났고 현재 횡령혐의로 고소된 상태다."

최씨는 CCS사와 분쟁 해결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2월 중순 "감청 장비 수입에 대해 알고 싶다"며 5개 사항을 이메일로 문의했다. 며칠 지나 2월 24일 CCS사의 피터 무시아니스 부사장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최―CCS사는 CDMA 감청장비를 생산하느냐.

피터 "CCS사는 거의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CDMA 감청장비는 러시아와 이스라엘 회사에 의해 생산된다. CCS사는 이런 작은 엔지니어링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중이다. 러시아 회사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 회사는 잘 모른다."

최―현재 어떤 나라에서 CDMA 감청장비가 가동되고 있는가.

피터 "내가 아는 한 CDMA 감청장비는 어디에서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CCS사는 TDMA와 GSM 감청시스템을 팔아왔다."

최―한국 회사가 CCS사로부터 CDMA 감청기구를 구입했는가.

피터 "어떤 회사도 구입하지 않았다."

최―그런 장비가 없다면 CCS사는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가.

피터 "정말 관심 있나. 개발비는 20만 달러에서 30만 달러가 될 것이다."

최―만약 개발할 수 있다면 귀사의 개발능력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피터 "CCS사는 아직 개발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GSM과 TDMA 감청장비를 개발하고 있으나 자금이 없어 CDMA감청장비를 개발하지 못하는 회사와 의논해 볼것이다."

이 문답에 따르면, CCS사는 CDMA 감청장비를 개발하지도 않았고 국내에 판매하지도 않았다. CDMA 감청장비가 가동되고 있는 나라가 없다는 대목도 주목할만하다. 그렇다면 CCS사는 왜 한국 언론의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피하고 있는 것일까.

강씨나 최씨는 "CCS사가 조달할 수 있는 GSM이나 TDMA 감청장비를 판매하기 위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관심을 끌려는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그 방증이 CCS사와 접촉하는 한국 회사마다 들은 얘기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CCS사와 GPS 합작회사를 추진중인 또 다른 회사인 파워텔레콤의 사장 S씨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독일에 CDMA 감청장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나 이스라엘에서 감청장비가 개발된다는 언급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도청 논란의 중요한 검증 대상이었던 CCS사의 CDMA 감청장비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CDMA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통신공학자들은 "코드가 2의 42승으로 43억 조합이나 되는 CDMA를 도청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통신회사들의 설명에 수긍하면서도 "이론적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복잡한 기술적 논쟁이 아니더라도 각 나라의 특수성을 보면 CDMA 감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 안보를 위해 감청이 불가능한 장비의 시판을 금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통신 검열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베트남이 CDMA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CDMA 감청의 역설적 증거로 볼 수 있다.

S통신회사의 간부 C씨는 "무선구간에서의 휴대폰 감청은 불가능하지만 국가 통제사회에서 휴대폰의 유선구간인 교환국에 암호를 푸는 디코더(decorder)를 설치하고 단말기 일련번호(ESN)와 가입자번호(MIN)를 입력하면 감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설비를 하려면 개별 이동통신회사, KT, 정보기관이 합작해야 가능하다"면서 "감옥 갈 것을 각오하면서 그런 협조를 할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CDMA 감청장비가 없다고 해서 도청 논란이 모두 잠재워 질 수는 없다. 휴대폰과 유선전화, 유선전화간 통화를 도청하는 지도 검증해야 할 대목이다. 한나라당이 문건 공개 시 휴대폰 도청에만 초점을 맞춰 관심에서 벗어났지만 유선도청은 가장 본질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이영성 기자 leeys@hk.co.kr

■ 정보기관 도청방식 실태

우리 사회의 도청 공포는 뿌리 깊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재야나 야당 인사들은 정보기관의 사찰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특수성 때문에 도청 방식이나 실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YS 정부 시절 안기부 간부를 지낸 A씨의 증언은 과거 도청이 어떠했는지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A씨는 안기부나 그 이전 중앙정보부의 국내 부분 도청은 24시간 내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유선 도청은 물론이고 정치인, 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호텔 음식점, 요정, 룸 살롱, 한정식 집 등에도 종업원들의 협조를 받아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남산 안기부의 정문 맞은 편에 있는 노란색 건물이 도청을 전담하는 과학보안국이었다. 도청팀은 8시간씩 3교대로 운영돼 한시도 쉬지 않고 가동됐다. 국내담당 1차장(현 국정원 2차장)은 아침 6시 반에서 7시에 출근, 가장 먼저 과학보안국의 메모를 보고 받았다고 한다.

이 메모는 주요 야당 인사들의 통화를 담고 있어 야당의 기류를 읽고 대처 방안을 만드는 데 아주 유용했다. 이 메모는 보안 차원에서 읽는 즉시 파기하도록 돼있었으며 1 차장은 중요한 내용만 별도로 안기부장에 보고했다. 과학보안국은 여야 의원들은 물론이고 안기부장과 그 이상의 선까지도 감청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간부들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직원들 사이에도 과학보안국의 노란 건물은 접근 불가 지역이었다.

그는 1994년 통신비밀보호법 통과 이후에 대해서는 "김광일(金光一)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신의 통화가 도청된다며 권영해(權寧海) 안기부장에 격하게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감청 부서인 8국이 있는 층은 직원들도 드나들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8국의 인력과 장비가 외사방첩국과 대공수사국으로 이관됐고 출입 가능 지역이 됐다.

해체되기 전 8국이 도청 의혹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조직이 방대했다는 점이다. 8국은 운영단과 연구단으로 나눠져 있으며 300여명이나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속칭 '귀마개'로 불리는 감청 요원들은 운영단에 속했으며 운영단 중 국내 담당이 6과로 40여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8국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측은 "그 정도 인원이 필요할 정도로 법 절차를 밟은 감청이 많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전직 국정원 간부 L씨는 "8국은 감청 외에도 반(反)도청, 해킹방지 연구 등 밝힐 수는 없지만 다른 업무가 많았다"면서 "과거 경험으로 지레 단정하는 것은 국정원의 변화를 모르는 탓"이라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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