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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12>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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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12>문재인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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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이 섞이고 조금은 헝클어진 머리. 안경 뒤의 시원하고 큰 눈. 선한 미소가 있는 입. 문재인(文在寅·50)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뽑는 대표적인 '쿨가이'(Cool Guy)다.사실 재조(在朝) 경험이 없는 변호사이며 정치 경험도 전혀 없는 그가 권력기관을 다뤄야 하는 민정수석으로 발표됐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일 처리가 무난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변호사 출신답게 상황판단이 빠르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健平)씨가 인사청탁 구설수에 올랐을 때. 그는 당시 "어수룩한 촌양반이 벌인 해프닝"이라고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진대제(陳大濟) 정통부 장관의 자격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전문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논리로 돌파했다.

민정수석으로서 그의 원칙은 "절대 정치쪽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 민정수석을 끝낸 뒤에도 정치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한다. 그는 "다음 자리를 고민하다 보면 여러가지를 고려하게 되고 사심(私心)이 개입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실제 정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6·13 지방선거, 8·8 재보궐 선거 때 후보로 나서 달라는 노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지만 이를 거절해왔다.

그런 그에게 청와대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노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라고 말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데, 밖에서 '유지하라'고 말만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막상 와보니 대통령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네요"라며 후회의 빛을 약간 비치기도 했다. 그에게는 어떤 직위보다도 '인권변호사 문재인'으로서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유신시대의 전형적인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경희대 법대를 다니던 1975년 유신반대 데모를 하다 구속돼 집행유예를 받고 강제징집 당했다. 80년 복학했을 때도 '서울의 봄' 데모로 잡혀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했지만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자 유수한 로펌의 스카웃를 뿌리치고 '잡(雜)사건 변호사'가 되겠다며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때 만난 사람이 노 대통령. 부림사건으로 구속된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을 변론한 이후 다시 평범한 변호사로 돌아와 있던 노 대통령은 그와 토론을 하고 시국·노동 사건 변론을 같이 하면서 '새로운 의식'을 찾았다. 노 대통령이 한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최근 문 수석은 조금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사검증 업무 등 격무에 시달린 탓이다. '친절'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기자들과의 통화에서도 예전과 다르게 목소리에 조금씩 짜증이 배어나오기도 한다. 본인은 정치에 뜻이 없다지만 민정수석실의 업무는 정치와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그가 과연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청와대 자리잡기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사진 이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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