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애가 할 말이 있다며 심각한 표정이다. 자기도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네 눈, 전형적인 동양 눈이라서 얼마나 예쁜데. 그리고 엄마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만들었어." 장난처럼 대꾸했더니 농담 아니라며 좀 진지하게 들어달란다."약간 과장하면 반 친구들 중 수술 안 한 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코 높이고 졸업식에 나타난 애도 있다, 나도 이왕이면 좀 큰 눈을 갖고 싶다"는 요지였다. 겁이 많아 아직 귀도 못 뚫고 사는 엄마한테 쌍꺼풀 수술이라니….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되뇌는 구세대는 아니건만 왠지 내 자식 몸에 칼을 댄다 생각하니 기분이 심란해졌다.
하지만 누가 자식을 이기랴. 이왕 하는 거 그럼 믿을 만한 의사한테 하자고 결론을 냈다.수술비의 일정액을 보탤 것, 쌍꺼풀 이상은 절대 불허 등의 조건과 함께….
수술을 결정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성형외과 간판에 사람들의 눈매였다. 저 사람 눈은 한 걸까, 안 한 걸까. 한 거라면 참 자연스럽게 잘 됐네. 누구한테 얼마주고 했을까….
만만치 않은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성형수술이 우리 생활 속에 감기 치료만큼이나 가깝게 다가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외국 시사지가 비꼰 대로 한국 사람들이 온통 외모지상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일까.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여론조사에선 우리나라 13∼43세 여성의 68%가 '외모가 인생 성패를 좌우한다'고 대답했고, '여자에겐 외모가 경쟁력'이란 광고 카피가 물의를 빚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성형수술에는 이 같은 외모 지상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자신감과 자기 만족이다. 마흔이 넘어 갑자기 코를 높이고 나타난 선배가 있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은 인생이라도 예쁜 코로 살고 싶었어". 더 놀라웠던 건, 그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그의 새 코가 내 눈에 예전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맥스웰 말츠의 임상 보고에 따르면 성형수술로 외모의 자신감을 되찾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인생 자체가 달라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얼굴이 아닌 정신을 뜯어 고칠 수도 있는 게 성형수술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비껴갈 수 없고, 이로 인해 남모를 열등감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이 혹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딸 아이의 성공적 수술을 기원하며 내린 결론이다.
/이덕규·자유기고가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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