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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건전한 新중심세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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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건전한 新중심세력을 바란다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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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국민들은 매일 놀라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불안은 새로 등장한 정부 구성원들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선택, 서열을 배격한 파격적 인사, 기존의 상식과 관례에서 벗어난 예측 불허의 행동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그러나 불안의 근본원인은 다른 데 있다. 광복 이후 이 나라를 지탱해온 여야 정치권은 물론 재계, 학계를 포함한 중심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적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들이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게 그 원인인 것이다. 어느 나라나 국민의 신뢰를 모으는 중심세력이 있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세계적 반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심세력이 뒷받치고 있어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강행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중심세력이 붕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이들이 도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스태블리시먼트는 일제 하에서 친일을 했고, 건국 이후 개발독재 정부의 근간이 되었으며,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방향을 잃고 첨예한 대립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우리네 짧은 정치사만 보더라도 실패한 대통령들의 기록만 남아있다. 이제 국민들은 여든 야든, 근대화 세력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더 이상 이스태블리시먼트의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이스태블리시먼트는 또한 공동체를 위해 솔선수범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기 희생에도 인색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유력인사들과 자제들이 국가 위기 때 앞장서 자기 희생을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전쟁의 경우만 하더라도 장관, 국회의원, 유명 기업인의 자제 가운데 장렬하게 전사한 기록이 있는가? 정작 한국전에서 중국 마오쩌둥 주석의 아들이 전사했고, 미군 총사령관 밴프리트 장군의 아들이 실종됐다.

우리 사회 중심세력의 이런 몰염치한 행동에 국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모 재벌그룹이 2세에게 무리하게 재산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들통이 난 분식회계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이상 탐욕과 이기로 뭉친 그들에게 국가 공동체를 맡기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스태블리시먼트는 국가 미래를 위해 서로 합의· 조화는커녕 불화와 갈등을 빚어왔다. 지역, 세대, 여야로 갈려 국가 공동체의 이익은 뒷전으로 돌렸다. 선거철마다 네거티브 캠페인에 국민들은 진저리를 치게 된 것이다. 민주화 시대로 이행한 후 갈등은 더욱 깊어져 남북 갈등보다 남남 갈등이 더 심각했다. 이로 인해 여야 모두를 국민들은 불신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에 새로운 중심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국민들은 건전하고 양심적인 중심세력이 형성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중심세력이란 스스로가 중심을 자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몇몇 장관에게서 보듯이 외계인처럼 정부조직에 들어와 물에 뜬 기름처럼 관료사회를 경계하는 등의 행동만으로는 결코 중심세력이 될 수 없다. 꾸준히 현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높은 도덕적 권위를 세워나가야 한다. 특히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은 그동안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기대를 모았으나 이제는 국민들이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만이 옳고 주변의 모든 것은 틀렸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보다 겸허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노 대통령의 새 정부는 이스태블리시먼트에 대한 부정의 도가 지나쳐 혹시라도 그 붕괴를 가속화하기 위하여 성급히 나설 경우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종 찬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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