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기관은 사정기관이 아닙니다. 투자자와 금융 이용자를 보호하는 서비스 기관이어야 합니다."이근영(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의 취임사 같은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임기보장 원칙 논란 속에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 온 그는 17일 이임식을 거쳐 35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이헌재, 이용근씨에 이어 3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2000년 8월. 금감위원장은 짧지 않은 공직인생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도 고된 자리'였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손에 '피'를 많이 묻혀야 했고, 매일 같이 서류 보따리를 들고 퇴근해 새벽 1시가 넘도록 잔업을 해도 항상 일에 쫓겼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부실 덩어리였던 은행들이 불과 2,3년 사이에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기관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며 "온갖 '게이트' 파문이 터질 때마다 언론의 비판을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모든 열정과 능력을 다 바쳐서 일한만큼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집요한 자진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켜온 이유에 대해 그는 "SK사태가 어디로 튈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는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시장에 대한 충격이 걱정돼 나름대로 수습을 한다고 부산을 떤 덕에 큰 태풍은 지나간 것 같다"며 "무엇보다 이정재 후임위원장이 시장을 잘 알아는 사람이기에 떠나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정치권으로부터 출마 권유도 받았고, 교수로 영입하겠다는 대학도 있지만 우선 건강을 위해 푹 쉬고 싶은 생각 뿐"이라는 그는 이번 주 중 서울 역삼동에 개인 연구실을 낼 예정이다. 3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해온 습관을 당분간 버리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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